[ 한국 기업들은 '봉' ]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한국에서 기업은 봉이다. 그 회사의 주식 한 주도 갖지 않고 있는 정치인들은 마치 큰 빚쟁이인 것처럼 돈을 뜯어간다. 그들의 내기골프에 기업인들을 동행시켜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내키지도 않은 정치헌금을 강요한다. 선거철만 되면 자신의 지역구에 투자해 달라고 떼쓰지만 기업인들로서는 그들의 요구를 쉽게 뿌리치기도 어렵다. 그 지역에 투자하면 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는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들은 제발 투자유치 조인식이나 공장 기공식이라도 해달라고 성화다. 홍수가 휩쓸고 갈 때마다 언론은 무슨 기업이 얼마만큼 수제의연금을 냈는지 마치 올림픽 경기 메달집계 현황처럼 시시각각 보도하면서 적게 내는 기업에 악덕기업이라는 도덕적인 징벌을 가하고 있다. 이들에게 기업은 자신의 사금고와 같다. 언제든지 원하면 돈이 나오는 곳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온갖 형태의 준조세에 시달린다. 준조세에는 각종 회비, 분담금, 수수료, 보험료 등 법적인 근거가 있는 것과 성금 등 자의적인 것,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진다. 법적 정당성과 강제성이 부여된 준조세의 경우라 해도 과연 경제적인 실효성이 있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징수를 담당하는 행정당국으로선 돈을 거두기 쉽고, 관리도 일반회계가 아닌 자신의 부처만이 집행할 수 있는 특별회계로 편성하기 용이한 각종 준조세들이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생겨날 때 기업의 '경제활동의 자유'는 억압된다. 어디까지가 선심성, 인기영합적인 전시행정인지, 어디서부터가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위한 투자인지 따져 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준조세는 징수의 근거라도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런 법적 근거는 없으나 기업들이 지불하지 않으면 돌아올 피해를 의식해 '자의반 타의반' 내는 준조세들이다. 파렴치한 기업이라는 사회적인 따돌림, 정치보복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은 한국에 없다. 기업이 반드시 준조세의 일방적인 피해자만은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간의 경제성장과정에서 새로운 사업권을 따기 위해, 경쟁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독점적인 원료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은행들이 벌여온 게임의 법칙의 하나가 준조세였다. 근거가 모호한 준조세는 뇌물과 맞닿아 있다. 이같은 주장은 모두에게 같은 정도의 책임을 지워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위험성이 있다. 국가권력의 강제성의 무시무시함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기업의 힘이 강하다 해도, 그래서 기업과 국가가 공생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법과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국가의 책임이 좋은 뜻이든 나쁜 뜻에서든 다 크다는 것을. 결국 국가가 어떠한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가가 문제의 근본이다. 기업이 원하지 않는 준조세의 횡포가 심할수록 조세저항도 따라서 커질 것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국경없는 자본거래는 자본의 이탈을 촉진하는 기술적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고 있다. 동시에 경제활동의 자유화, 외국자본 유치경쟁 가속화는 투명하지 못한 준조세가 남발되는 경제에 기업의 이탈을 재촉할 것이다. 외국자본과 외국기업이 우리에게 와서 투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와 있던 외국기업들도 철수하고 국내기업도 살 곳을 찾아 외국으로 나가는 '대탈출'의 순간이 오면 그 경제는 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