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구매비리 관련 장비업체에 대해 거래중단을 통보하고 경영진 교체까지 요구하고 나서 반도체 장비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2개 업체에 매출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다 하이닉스가 자금난으로 투자를 거의 중단한 상태여서 생존을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삼성전자는 구매비리를 제거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자사의 비리관련 직원들을 먼저 인사조치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비업체들은 지나친 "월권행위"로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게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거래중단 연말께 최종결정=삼성은 지난 7월부터 반도체장비 구매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감사를 벌였다. 일부 감사는 아직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장치업체중 거래중단 대상은 연말께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삼성의 이번 감사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4조원어치의 반도체 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적지않았으리라는 판단과 첩보에 따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은 경영을 진단하고 지도한다는 차원에서 협력업체들에 대해서도 감사에 협조를 구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장비업체들에게도 감사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규모가 큰 해외기업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국내업체들과 해외의 중소장비업체들이 주요 감사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산호세에 있는 현지법인에도 감사팀을 파견할 정도로 샅샅이 뒤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회계장부는 물론 생산원가 구성표를 요구하고 골프 및 술 접대내역까지 캐묻는 바람에 반발이 적지 않았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반도체 장비업계의 한 최고경영자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관행상 어쩔수 없는 경우가 많고 노골적으로 사례를 요구받는 때도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장비업체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형제가 삼성전자에서 장비 구매를 담당하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월권논란=협력업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것부터 월권이라고 장비업체들은 보고 있다. 더욱이 경영진교체까지 요구한 것은 회사를 인수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장비업체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반도체업계 불황으로 장비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처지인데다 호황기에는 수익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해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경쟁력의 관건이 되는 핵심장비들을 삼성이 직접 관할하려는 시도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 반도체업체 대표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결국 구매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함께 살려는 긍정적인 시도로 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강도 감사의 배경=삼성은 삼성언론재단 자금횡령사건,건설부문의 교량붕괴사고와 비리사례 등에 이어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까지 비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자 대대적인 감사에 나섰다. 그동안 삼성은 비리가 거의 없었고 이는 경쟁력의 원천중 하나라고 자부해왔다.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은 편이지만 점차 늘어나는 징후를 보이자 이를 방치할 경우 근본적인 경쟁력까지 떨어뜨릴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고강도 조치를 취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부문의 경우 협력업체를 등급별로 나누어 거래규모와 협력의 정도를 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