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동시 다발적 테러가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났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당황하며 끝을 모르고 추락하던 주가는 점차 기력을 회복, 테러 이전 수준으로 근접했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금리 인하, 적극적인 경기부양 노력, 증시 부양 의지 표명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경제에 미친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일부 지표가 힘을 보탰다. 아직은 진행중이지만 우려했던 전쟁 확산이나 추가 테러가 발생하지 않은 점도 심리 회복에 일조했다.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지난달 10일 대비 낙폭을 4%대로 좁혔고 종합지수도 이를 반기며 한때 13% 이상 벌어진 폭을 4.35%로 만회했다. 종합지수는 이에 따라 1차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520선에 바짝 다가섰고 코스닥지수는 거래 급증과 함께 사흘째 오르며 추가 상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 외국인 매수 지속되나 = 최근 증시 반등의 가장 큰 동력은 회귀를 갈망하는 상승 욕구와 외국인 매수세다. 심리와 수급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가운데 펀더멘탈은 다소 뒤로 처진 느낌이다. 외국인은 추석 연휴 이후 엿새 동안 모두 4,197억원을 순매수하며 종합지수가 479에서 517까지 20% 가까이 급등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코스닥에서는 8거래일 연속 매수우위를 잇고 있다. 11일엔 지난 8월 1일 이후 최대 규모인 1,569억원을 순매수, 반도체·통신주 강세를 주도했다. 외국인 매수는 뉴욕 증시 안정에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급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증시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탓에 유동성이 좋고 안정적인 한국시장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급에 기댄 불안한 상승을 누리고 있는 시점에서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질 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외국인은 철저히 뉴욕 증시와 연동된 매매패턴을 구사하며 대형주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급등으로 가격메리트가 감소한 터라 지속적인 비중확대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교보증권 임송학 투자전략팀장은 "뉴욕 증시가 테러 이전 수준을 회복한 시점에서 외국인이 강한 매수세를 이어갈 지 의문"이라며 "외국인이 받아줄 때 착실히 차익실현을 하면서 물량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 지수대에서 추가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상승할 여지가 크지 않은 만큼 현금 비중도 확보해 나갈 시점이라는 얘기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추석 이후 반도체, 통신 등 기술주 오름폭이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이들 종목에 대해 고점 매도에 나서는 한편 이달중 이어질 박스권 장세에 대비, 저가대형주 등으로 관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반도체 강세와 뉴욕 증시 = 수요일 뉴욕 증시 강세는 반도체주가 이끌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편입된 16개 종목이 모두 상승하며 6.74%나 올랐다. 국내 반도체 관련주에 영향력이 큰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러지가 각각 7.97%, 6.15% 급등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6.71% 상승하며 16만원선에 근접했다. 아큐텍반도체, 유일반도체, 동양반도체, STS반도체 등 이름에 '반도체'가 들어간 종목이 줄줄이 가격제한폭까지 치솟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와 국내 증시의 끈끈한 고리를 다시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반도체에서 비롯된 뉴욕 증시 급반등에 뚜렷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계절적 성수기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현물 가격이 여전히 약세권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있다. 일부 증권사의 실적 경고에도 꿋꿋이 오름세를 유지, 바닥을 쳤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심리적인 기대감에만 의존한다면 의외로 손쉽게 무너질 공산이 크다. 현실을 앞서간 심리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 지 미지수다. SK증권 전우종 기업분석팀장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강세를 보이고 외국인 매수가 삼성전자에 집중되며 급등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국내외 정세를 고려하면 종합지수 530선과 삼성전자 16만원선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 내친김에 540까지 = 지수가 본격적인 매물대 하단부에 근접하면서 피로감을 드러낼 시점이 다가왔다. 이날 종합지수는 파죽지세로 519까지 치솟았으나 결국 520은 밟아보지 못한 채 물러섰다.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매물이 주원인이지만 경계성 매물도 만만치 않게 흘러나왔다. 매물 공백대인 500∼520선과 달리 지난 1년여간 지지선 역할을 해오던 520선 위쪽에는 상당한 대기 매물이 쌓여 있는 가운데 테러 충격으로 생긴 하락갭의 절반에 도달해 있다. 또 테러 이전에 돌입한 경기 하락 터널이 수출감소, 성장률 저하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데다 보복 전쟁과 추가 테러의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점도 상승세를 제한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지수가 테러 이전 수준인 540선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 경기쪽에서 뚜렷한 신호가 나와 주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날 급등으로 회복된 투자 심리와 수급 여건을 발판삼아 540선 돌파를 시도하리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매물대 돌파를 위한 조정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물대를 단숨에 돌파하지 못할 경우 조정 과정이 불가피하다. 현재 시장에서 520∼540선에 밀집한 매물벽을 한번에 뛰어넘을만한 모멘텀을 끌어내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