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에 생명력을 .. 안충영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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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애덤 스미스는 그의 불후의 명저 '국부론' 제1장에서 핀을 만드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핀을 만드는 공정을 여러개로 나누어 분업을 하면 혼자서 만드는 것보다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이 수십배로 올라간다는 점을 역설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기업은 그와 같은 분업을 수행하고,국부를 효율적으로 증진시킨다고 했다.
지난 1987년 미국 MIT대학의 석학들은 일본에도 뒤지고,침체일로에 있던 미국 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 'Made in America'라는 단행본에서 지혜를 모았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요체는 기업이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 2세기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예나 지금이나 '잘 만들어내는' 조직과 제도를 갖추는 것이 국부의 원천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다시 입증된 것이다.
한국 경제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라는 터널을 벗어난 시점에서 다시 불황과 불확실성의 터널을 맞이하고 있다.
적어도 잠재성장률 5∼6%대의 성장을 해야 하는 우리경제가 2%대로 내려앉는 것은 수용하더라도,기업의 투자심리가 작년부터 움츠러들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 테러에 대한 보복전의 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모든 원인을 돌릴 수 없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기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성숙경제는 소비촉진에 역점을 둘 수 있지만,중위소득 국가로서 한국은 '잘 만들어내기 위한 기업의 투자' 촉진에 더욱 역점을 둬야 한다.
그 동안 정부의 수많은 규제철폐나 완화에도 불구하고,기업은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의 철폐나 완화를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고 있다.
기업의 투자심리가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해 자연스럽게,그리고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구조조정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누누이 강조한대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는 확실한 단안을 내려야 한다.
지난 3년여 동안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앞장섰다.
외환위기라는 비상사태 아래 IMF와의 협약 이행을 위해 새로운 규제의 신설도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제는 구조조정의 과정을 시장으로 돌려야 한다. 정부는 축구시합의 심판이 절대로 볼을 차서는 안되는 것처럼 경쟁을 촉진하는 심판관의 역할로서 끝나야 한다.
산업보호의 울타리를 국내에 쳐 놓았을 때 규제와,글로벌경제 아래 규제는 우선 성격이 다르다.
산업보호시대의 독과점시장의 개념은 열린 경제에서는 바뀌어야 한다.
IMF 체제이후 외국인이 우리 주식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기업행동을 감시하고 있다.
새로운 지배구조 아래 투명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주가가 올라가는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
이제 출자총액한도제와 대기업 지정제도 등이 기업의 자발적 투자의지에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이익을 못 내고 부채가 많은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장치가 마련돼 가고 있다.
은행도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부실기업을 가려내고,부실 대출에 대해서는 자동적으로 적색 경보가 울리는 장치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투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완전히 기업의 몫이다.
따라서 기업이 스스로 투자하고 싶은 곳에 투자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기업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투자 마인드를 부추기는 제도와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정부의 몫이다.
그 동안 IMF 터널 속에서 부채 줄이기,슬림화 등 창조적 파괴는 이제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내고,그리고 '잘 만들어서' 국부를 올리는 방향으로 승화돼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정서론'에서 전체의 부가 증진하면 정의와 사회의 분별력 만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 같은 도덕적 가치도 함양된다고 했다.
기업(corporation)의 어원은 원래 라틴어의 협동(cooperation)에서 유래됐다.
투자에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국부와 도덕적 가치까지 함께 높일 수 있는 협동의 문화를 한국 기업들은 노사관계는 물론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정립해야 한다.
cy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