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요리 료지 나고야대 교수(63)가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10일 저녁 일본언론은 의외로 차분했다. 테러와의 전쟁 뉴스가 워낙 큰 관심사여서인지 TV 등 방송매체는 아프간 폭격 소식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국가적 경사로 받아들이면서도 11일 아침 신문들 역시 요란스럽지 않았다. 일본 언론이 호들갑을 떨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다.수상 횟수와 알맹이에 대한 은근한 자신감이었다. 일본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이번으로 모두 10명이다. 태평양전쟁 패망 4년 후인 1949년 유가와 히데키 교토대 교수가 물리학상을 받은데 이어 반세기만에 수상기록이 두자릿수로 올라섰다. 화학상은 작년에 이어 2연패의 경사를 안았다. 하지만 일본에 돌아간 노벨상의 진면목은 횟수보다 내용에 있다. 일본은 수상자 10명중 물리학과 화학에서 각각 3명의 수상자를 냈다. 문학상(2회) 평화상 의학상도 영광을 안았지만 기초과학에서 탄탄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이 한풀 꺾였다지만 세계가 일본의 기초과학 실력을 알아주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경제는 망가졌어도 곳간은 튼튼해 국가 학교가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수 있다. 일본이 누리는 선진국 프리미엄이 막연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하고 싶은 또 하나의 배경은 국민성이다. 어떤 일이건 자신의 주어진 책무에 전력을 다하면서 한눈 팔지 않는 장인정신은 일본의 뿌리를 떠받쳐 주는 최고의 정신적 자산이다. 노요리 교수는 "과학자는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무언가 사회에 공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후학들에게 가르쳐 왔다. 노벨상 후보로 거명된 후 근 20년간 번번이 영광을 놓쳤으면서도 '상은 학자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는 소신을 굳게 지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 쇠락으로 세계무대에 비쳐진 오늘날 일본의 인상은 강국이 아닌 만만한 경쟁상대다. 하지만 정치건 경제건 전문가 비전문가가 따로 없이 제 목소리만 내면서 영웅을 키우지 않는 한국 사회에 노벨상 10회의 일본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겁고 의미심장하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