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삼라만상이 치밀한 자연질서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고 믿었던 옛 사람들은 그 질서를 음양오행에 따라 역학(易學)으로 정립해 놓았다. 그리고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길일(吉日)과 흉일(凶日)로 나누고 길일만을 택해 일상의 대소사를 치렀다. 인생대사중 대사인 결혼 택일은 '날받이' 또는 연길(涓吉)이라고도 불렀다. 택일하려면 오행(五行)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신랑 신부의 나이와 일진에 따라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가려낸 뒤 살이 든 날을 빼고 복이 든 날을 택한다. 양가의 부모가 혼인한 날,두 집안의 불길했던 날,제사일,농번기,삼복이 낀 달,마지막 달은 피하고 택일했다. 1년 3백65일은 결혼에도 좋은 날,나쁜 날,무난한 날인 '손 없는 날'로 나뉘어진다. 또 결혼 당사자들의 생년 생월 생일 생시(사주)와 연결시켜 택일하는 것이므로 '모두에게 길한 날'이란 애당초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니 '10년만의 길일'이니 '60년만의 길일'이니 하는 것은 과장에 불과하다. 오는 21일(음력 9월5일)이 '길일'이라고 해서 서울 시내의 예식장은 물론 1급호텔들도 일찌감치 예약이 끝났는데도 굳이 이날 결혼식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날은 액운이 없다는 황도일(黃道日)로서 황도시(黃道時)인 오전 11시부텨 오후 3시까지가 가장 좋다는 얘기다. 황도란 지구에서 보았을 때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태양의 궤도를 말한다. 황도는 적도면에 약 23도 27분 기울어져 있고 황도가 적도와 만나는 두 점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점 추분점이다. 역학에서 음양의 조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다는 절기에 들어있는 날이 황도일이다. 길일운은 당일에만 유효하고 결혼생활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역술인의 얘기고 보면 굳이 한데 몰려 북새통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왕이면 좋다는 날을 택일해 결혼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결혼이라면 농경시대의 옛 시간개념에 따라 구태여 날을 가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