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려야 나라가 산다] 제2부 : (5) (기고) '시장원리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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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력 집중 막자고 툭하면 규제...시장원리.개방경제 역행하는 꼴 ]
이철송 < 한양대 법대 교수 >
정부가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하고 기업에 활력을 주기 위해 재벌의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하고 은행 주식의 취득 규제도 완화할 것을 검토중이라 하여 찬반론이 비등하고 있다.
각종 재벌규제법이 그 위반행위를 반윤리적인 범죄로 치부해 오던 터에 경기가 일시 나쁘다고 고삐를 늦춘다는 것은 정론이 아니다.
서민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절도범의 처벌을 완화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거미줄 같은 재벌 규제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모든 재벌규제의 총론적인 명분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것이지만 실제 그 목적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출자총액제한만 하더라도 그 덕에 기업간의 출자가 얼마가 줄었네 하는 홍보는 있었지만 이로 인해 경제력이 국민들에게 골고루 분산됐다는 논증은 없다.
우리나라의 재벌규제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공정거래법이 특히 심하여 본래의 사명인 '독점의 방지'보다는 '재벌규제 기본법'으로 둔갑했을 정도다.
이에 맞서는 논리는 '우리나라 재벌의 비리를 세계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재벌의 비리가 우리나라에 특유하다고 하자.
그 비리란 무엇인가.
탐욕 탈세 뇌물 등이 손꼽힌다.
하지만 이것은 재벌을 비난할 소지는 될지언정 출자총액을 제한해서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
출자총액 제한은 재벌의 중복투자 과잉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단골로 동원되는 명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란 바로 이런 것을 장려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서로 피나는 경쟁을 함으로써 소비자는 가장 싸고 질 좋은 상품을 공급받고 이 경쟁에 지친 자는 도태됨으로써 시장의 최대 효율이 유지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미학이다.
모든 재벌규제는 다분히 선동적인 논리로 각색돼 그 정당성의 취약함이 숨겨져 왔다.
입법자의 본뜻은 아니겠지만 재벌규제는 정권의 편익에 이용된 일도 많다.
산업사회에서는 돈 가진 자를 다스리는 일이 긴요하여 정권의 교체를 전후해서 으르고 달래며 재벌을 순치(馴致)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 과거 우리 재벌규제의 실상이다.
또한 재벌규제는 기업을 옥죄는 효과가 신통하여 정부의 온갖 정책수행을 위해 혹은 채찍으로 혹은 당근으로 쓰여졌다.
금융기관의 주식소유 제한도 당초 기대보다는 금융산업의 논리를 왜곡시킨 죄가 더 크다.
과거 투신사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제 속살이 곪도록 주식을 사들이다가 오늘의 참담한 모습이 되었고 은행이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해서 한보철강에 수조원씩 융자했다가 주인까지 바뀌는 파경에 이른 것은 금융기관에 제 잇속을 차릴 줄 아는 민간인 대주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일단 규제법을 만들면 그 효과를 검증하는 습관이 없다.
만들 때의 논리가 관료들의 머리에 당위의 법칙으로 천착되고 다시 돌아볼 생각을 않는 것이다.
정부가 출자총액 등을 운위하는 것이 재벌정책에 관한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 경제를 위해 그지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 일환으로 설득력 있는 논리에 입각해 모든 재벌규제법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냉철히 검증하고 과감히 취사할 것을 건의한다.
< chulsong@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