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외로 콜금리가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표금리인 국고채금리가 사흘동안 0.45%포인트나 오르는 등 주요 채권수익률이 일제히 급등하고,국채선물이 1백포인트 이상 폭락하면서 거래량이 11일 이후 사흘 연속 사상최대를 기록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채권시장이 일시적이나마 거의 마비상태를 보였기 때문이다.이는 국내금융시장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앙은행 개입으로 채권투매 사태가 진정됐기 때문에 MMF(머니마켓펀드) 환매사태나 투신사 유동성 위기 재연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지만 생각해볼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상황이 긴박했던 만큼 한국은행이 지난 주말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서둘러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금융기관에 1조5천억원의 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하고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지준을 신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앞으로도 경제여건에 따라 콜금리 목표수준을 조절하겠다고 밝혀 추가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다행히 채권시세 폭락(채권수익률 상승)이 진정됐지만 이런 땜질식 응급처방으로 채권시장 불안요인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이번 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기관투자가들이 지나치게 성급히 콜금리 인하를 기대한 탓이지만 근본적으로 자금흐름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지난달만 해도 은행과 투신사의 수신고가 19조원 가까이 늘어나자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국고채 매입에 나서는 바람에 3년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불과 보름만에 0.55%포인트나 떨어지는 등 국고채 투기열풍이 대단했다. 이렇게 시중자금이 국고채 거래로만 쏠리는 것을 시정하자면 대우자동차나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한 기업구조조정을 가속화해 대출위험을 낮추고 자금흐름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가뜩이나 시중자금이 단기부동화돼 있는데 유동성공급 확대로 금융시장 안정을 꾀하는 도식적인 대책을 되풀이한다면 국내금융시장이 외부충격에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통화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국고채 투자에만 매달리는 안일한 자세를 벗어나 자산운용대상을 다변화함으로써 금리변동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전망인데 언제까지나 경제여건 탓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