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광고장이들"에서 주인공은 중요한 면접을 하러 가는 길에 가진 돈을 다 털어서 비싸지만 점잖은 넥타이 하나를 산다. 자신감을 위한 무장이다. 이처럼 넥타이는 실용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소품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남성패션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역사는 기원전 50년경 고대 로마 병사들이 목에 휘감아 착용한 "포칼(Focal)"에서 시작됐다. 이 포칼(Focal)은 거의 목도리에 가깝고 현대의 넥타이 모양과 같은 장식적인 액세서리로 원형이 완성된 것은 1656년 프랑스에서 였다. 당시 크로아티아의 크로아트 연대 병사들이 터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파리에 개선기념 시가행진을 가졌다. 이 행진에서 크로아티아 지방의 용병부대 장교들은 황제 루이 14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의미로 앞가슴에 크라바트(Cravate)라는 장방형의 천을 매고 있었다. 이것을 본 황제와 귀족들이 그대로 흉내 내면서 넥타이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넥타이가 프랑스어로 크라바트(Cravat)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크로아트 연대에서 유래됐다. 그 후 크라바트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가 19세기초에 다시 나타났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여러 가지 스타일로 변형되고 발전되었다. 극성스런 영국 신사들은 목에 천을 걸쳐야 멋쟁이로 여겼으며 문양이 화려할 수록 옷을 더 잘 입는 것으로 생각했다. 때로 타이는 목부문에서 너무 높아져 머리를 돌리려면 몸 전체를 움직여야 했을 정도다. 게다가 목에 두른 타이가 너무 두꺼워 칼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 타이는 영국으로 건너간 뒤 크라바트라는 말 대신 현재의 넥타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후 길이 1백32~1백42cm, 폭 7cm 내외의 작은 이 헝겁조각은 전세계 남성들을 매료시켰다. 미국의 가수겸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는 5백개 이상의 타이를 갖고 있었으며 공연중에 그를 보고 환호하는 여성 팬들에게 타이를 풀어 던져주곤 했다. 코미디언 겸 배우인 다니 케이 역시 광적인 타이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