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허구 조화된 대기업 흥망사..최용운 '재벌에 곡(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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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작가 최용운씨(47)가 대우그룹을 모델로 한 대기업의 흥망사를 다룬 장편소설 '재벌에 곡(哭)한다'(문이당)를 냈다.
대기업의 영욕을 통해 한국 경제의 그늘진 단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낡은 경영관행과 함께 정치 경제적 부조리들을 들춰냄으로써 정치인과 관료들도 기업몰락의 공범임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은 육대주그룹 총수의 비서직을 25년간 수행했던 작중 화자 '나'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나는 우리나라 그룹의 30년 역사를 봉건제도의 한 변형으로 본다.
계열사 회장급과 사장급이 주군(그룹총수)으로부터 영지(회사)를 하사받는 대신 잠시 맡아 운영하는 체제다.
나는 석유파동이 일던 지난 73년 육대주물산 김병수 회장의 권유로 입사한다.
육대주물산은 당시 혁신적인 경영방식으로 한국경제를 견인하는 수출역군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석유파동이 닥쳤을 때도 '일에 미친' 인재들이 세계시장을 공략한 덕분에 2년 후에 육대주는 11개 계열사와 6만명의 직원을 가진 그룹으로 급성장했다.
육대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과 신군부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다.
신군부의 정적인 3김씨를 후원했고 기업이익을 부동산투기 등에 전용한 것이 화근이돼 육대주는 상당액의 기업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되지만 일단 고비를 넘긴다.
그러나 세계경영은 다국적기업의 견제에 말려 고전하고 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자 과도한 차입금과 경영의 불투명성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작가는 파산의 결정적인 원인을 '내부로부터의 신뢰상실'로 파악한다.
모든 권한이 총수에게 집중돼 있어 임원들은 밥그릇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또 정치인과 관료들의 경제정책 실패도 몰락을 재촉한 요인으로 그려진다.
기업은 파산이란 벌을 받았으나 정치인과 관료들은 여전히 건재한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작품속에 실명은 나오지 않지만 사실과 허구가 잘 짜여져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