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려야 나라가 산다] 제2부 : (7) '규제에 멍드는 금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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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은행은 최근 인터넷뱅킹 솔루션을 일본 시중은행에 수출할 기회를 잡았다.
작년 6월 2백억원을 들여 한국휴렛팩커드(HP)와 공동 개발한 인터넷뱅킹 솔루션을 일본에서 6백억원에 사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주택은행 입장에선 수익도 수익이지만 한국 은행의 인터넷뱅킹 시스템을 일본 은행에 수출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자랑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 은행은 말도 못 꺼낸 채 속만 태우고 있다.
현행 은행법상 소프트웨어 판매는 은행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대로라면 인터넷뱅킹 솔루션을 수출할 수 없다.
이같은 문제는 국내 금융관련 규제가 대부분 네거티브(negative)가 아니라 포지티브(positive) 시스템인 데서 비롯된다.
'무엇 무엇만 하지 말고 나머지는 하라'는 게 아니라 '무엇 무엇만 하고 나머지는 해선 안된다'는 식이다.
그만큼 국내 금융기관들은 운신의 폭을 광범위하게 제한받고 있다.
정부가 입만 열면 규제완화를 외쳐도 현장에선 "규제를 더 풀어달라"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말 1백51건이나 되는 금융규제를 풀었다.
지난해 1단계로 90건의 금융규제를 완화한데 이어 2단계 금융규제 완화를 단행한 것.
그러나 업계에선 경쟁제한적 진입규제 등 핵심 규제가 여전한데다 지금까지 푼 규제보다 훨씬 많은 규제들이 남아 있다며 만족스러워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풀어주겠다는 규제도 본질을 비켜 '시늉'만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은행 소유지분 규제 완화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은행 주인 찾아주기'의 관건인 국내 기업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늘려줄 예정이다.
표면적으론 획기적인 규제 완화다.
그러나 4%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단서를 달아 '하나 마나 한' 규제완화라는 비판을 받는다.
은행 지분제한을 이런 식으로 풀어봤자 정작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기는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더 심각한 건 외국 금융사와의 역차별이다.
현행 은행법은 외국인이 국내 은행의 지분을 갖는 데는 한도 제한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외국인의 지분범위 안에서만 4%이상 은행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돼 있다.
외국인은 국내은행의 1대주주가 될 수 있지만 국내 기업은 절대 1대주주가 될 수 없다.
금융 규제의 문제점은 그 규제의 목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기업을 옥죄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규제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실제 정부가 기업들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를 풀면서도 의결권 제한이란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대기업의 은행지배를 사실상 막기 위한 조치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한 계열기업군에 자기자본의 25%이상 돈을 못 빌려 주도록 한 '동일계열 신용공여 한도규제'나 보험회사가 자기 계열기업에 대해 투자나 대출을 총자산의 3% 이상을 못하도록 한 자산운용 규제 등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확장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의 돈줄을 규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개발연대에 정부가 은행을 통해 자금을 배분해가며 대기업을 집중 육성했던 '원죄'가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은행을 통해 커진 기업을 규제하려면 은행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산업정책 목적의 금융규제는 글로벌 경쟁시대엔 걸맞지 않다.
국내 금융산업이 외국에 거의 모두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금융산업 자체를 규제로 옭아매 놓는 것은 한국 금융회사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국내 금융회사는 이런 저런 이유로 자산운용이나 업무범위를 철저히 제한해 놓고,외국 금융사와 경쟁하라는 것은 어불성설"(A보험 관계자)이란 지적이 나올만 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2001년 세계 경쟁력 연감'에서 한국의 금융산업 경쟁력을 조사대상 49개국중 35위로 평가했다.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결정적 이유가 지나친 규제 탓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
"세계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금융 규제는 더욱 빨리, 더욱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홍기택 중앙대 교수)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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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이희주 산업부장(팀장) 박주병 손희식 차병석 김준현 김홍열 김용준 오상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