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싱가포르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소식은 우리 정부와 경제계에 적지 않은 충격이 될 전망이다. 한국이 칠레와 FTA 체결을 추진하자 이에 자극받아 뒤늦게 협상을 시작한 일본이 한국에 앞서 세계 경제의 블록화 흐름에 동참하게 된데다 '한국은 FTA에 참여하지 못한 유일한 WTO 회원국'이란 명예롭지 못한 처지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같은 고립은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나라로서의 대외 신인도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실리 측면에서도 잃는 것이 많다는게 경제계 지적이다. 역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수출과 해외 투자 분야에서 직.간접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 세계화와 지역화 =21세기 세계 경제질서의 특징은 세계화와 지역화라는 두가지 흐름으로 설명된다. 세계화가 전세계적인 교역 확대를 추진하는 흐름이라면 지역화는 역사적.지리적·문화적 공통 분모를 가진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내 국가간의 교역 자유화를 의미한다. 세계화를 대표하는 기구가 바로 1백42개 회원국을 가진 세계무역기구(WTO)이고 유럽연합(EU) 아세안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FTA 등은 지역화를 상징하는 경제협력체다. 따라서 지역화 흐름에 참여하지 않는 경제협력은 21세기 경제질서의 한 축을 포기했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 거세지는 지역화 추세 =WTO가 전세계 회원국을 총괄하는 새로운 교역질서를 만들기 위해 뉴라운드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다자간 협상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보듯 타결이 쉽지 않다. 모든 회원국의 이해를 일치시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WTO는 뉴라운드 출범을 공식 선언하기 위해 오는 11월 WTO 각료회의를 열 계획이지만 아직껏 주제선정 등에서 명확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지역화 흐름은 날로 강화되는 추세다. 양자간 FTA 체결에서부터 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경제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지역협정은 WTO로 공식 통보된 것만 2백20개(2000년말 기준)에 이른다. WTO 회원국 수가 1백46개인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회원국이 두 개 이상의 지역협정에 가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칠레의 경우 현재 8개국과 FTA를 맺고 있고 13개국과는 추가 협의를 갖고 있을 정도다. 이같은 흐름은 협정 체결국간 관세 인하 및 각종 비관세 장벽 철폐 등을 이루면서 시장확대를 꾀하고 상호보완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 실익을 챙기기 위해서다. 협정에서 제외된 역외 국가는 상대적으로 보다 높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각국이 가능하면 많은 지역협정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한국의 현실 =당분간 지역협정이 없는 외톨이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난 98년 양국 정상의 합의에 따라 추진된 한.칠레 FTA 체결작업이 6개월 넘게 중단된 상태이고 당분간 재개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연말 이전에 협상 돌파구를 찾는다는 방침이지만 사과 배 등 농산물 시장개방을 수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낙관하기 어렵다. 당초 칠레를 첫 FTA 협상 상대로 선정한 이유가 협정 체결에 따른 농산물 시장개방 등 국내 여파가 가장 적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국가와 새로 협상을 추진한다 해도 성사 여부를 장담키 어렵다. 정인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 연구팀장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지역협정을 늘려가면서 우리 기업들이 받게 되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며 "이같은 추세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멕시코 사례를 볼 때 지역협정 참여는 부진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시장을 넓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 [ 용어풀이 ]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국가간 상품 및 서비스 교역을 둘러싼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다. 1개 국가가 유럽연합(EU)과 같은 거대 경제블록과 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 FTA 체결국은 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각기 별도의 관세와 무역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에 공동 역외관세를 유지하는 관세동맹과는 다르다. 경제통합이 '자유무역협정->관세동맹->공동시장->경제동맹'으로 이뤄진다고 볼 때 가장 낮은 수준의 통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