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롱베이'] 2000여 봉우리...'神이 수놓은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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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찌푸린 하늘.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했다.
맑은 날씨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원망스런 마음으로 다시 하늘을 올려다 봤다.
걱정은 잠시 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8시30분에 출발해 차로 5분쯤 달렸을까.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에메랄드 빛 바다, 그 위에 뭔가 흐릿한 형상들이 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천혜의 절경 하롱 베이(下龍灣).
옛날 외적이 침입했을 때 하늘에서 수많은 용이 내려와 적을 물리치고 보석을 얻었는데 그것이 기암으로 변해 베트남을 수호한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어떤 이는 중국의 계림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신이 수놓은 숲'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의 보물'이다.
표를 끊고 배에 올랐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봐도 2천여개에 달한다는 기암괴석은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 날씨 탓을 하며 곧바로 2층 갑판으로 향했다.
서서히 배가 미끄러져 나갔고 출항을 축하하듯 선선한 바람도 불어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용을 닮은 바위 하나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닭 모양을 한 한쌍의 바위가 눈인사를 보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기암괴석의 환대가 마냥 즐겨웠다.
잠시 숨을 돌리라는 듯 선장이 배를 세웠다.
배를 대고 내린 곳은 바위절벽 가운데 형성된 석회동굴.
한국의 환선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함이 일품이다.
다시 배로 돌아왔다.
빈틈없이 자리잡고 있는 2천여개의 보물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에 담으며 사진기 셔터를 쉴새없이 눌러댔다.
가끔씩 고기잡이배들이 옆에 붙어 흥정을 붙이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선상 어시장.
새우나 게가 대부분이다.
비경 감상을 방해하긴 했지만 그들의 떠들썩함이 밉지는 않았다.
유람 3시간이 넘은 12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베트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2층 갑판으로 향했다.
잔잔한 물살에 식곤증으로 스르르 눈이 감기려 할 때 갑자기 앞에 나타난 한 무리의 뗏목.
고깃배도 아니고 유람선도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몇 가구가 모여 사는 수상촌(水上村).
열악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집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요리도 하고 TV도 보고 잡담도 즐기고 배가 다가오면 해산물도 팔았다.
음식찌꺼기 처리를 위해서인지 개를 키우는 모습도 정겨웠다.
뭍에서의 편안함 대신 물에서의 낭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예정된 5시간의 선상유람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절경을 뒤로 한 채 배가 방향을 틀었다.
돌아올 땐 좀 빠른 속도로 배가 나아갔다.
미련이나 아쉬움 같은 건 빨리 털어버리라는 듯.
환영인사를 보냈던 바위들이 이번엔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제서야 비경 속의 흥취에서 조금은 깬 듯했다.
하롱베이(베트남)=탁학연 기자 t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