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경 < KTF 사장 ykl1943@magicn.com >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주범을 응징하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이 아랍세계의 반미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국내 언론사들도 특파원을 파키스탄과 인도로 속속 파견해 현지 상황을 보도중이다. 사건이 있는 곳이면 기자는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가고 그 와중에 불운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기자의 소명감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얼마 전에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서방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하자 이슬람의 전통복장을 하고 잠입했던 영국 여기자가 붙잡혀 곤욕을 치렀다. 전쟁 종군기자들이 포화의 연기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을 자주 본다. 특히 6·25때 벽안의 서양 기자들이 가난에 찌든 한국에까지 와서 전쟁의 생생한 현실을 사진에 담다 목숨을 잃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같은 기자정신이 숭고하게 느껴지지만 취재 일변도의 접근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나 사회,혹은 취재대상의 질서를 존중하고 교감을 이룰 때 대중들에게 보다 가치있는 기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 강연이나 행사에 참석해 보면 너무나 일방적인 취재태도에 놀랄 때가 있다. 강연내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로 인해 강연에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심지어 행사내내 전면에서 활동,행사를 압도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독자에게 보다 좋은 사진과 기사를 제공하려는 의도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사진촬영을 위해 일정한 거리 밖에 포토라인을 설정하거나 행사 전후로 취재활동을 제한해 행사의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있다. 매사에는 불확실성 원리가 적용된다. 사물을 너무 자세히 관찰하다가는 그 자체를 변질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관찰 배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현미경의 조사강도를 높이면 피사체가 파괴되는 것처럼 취재가 특정부분에 밀착되다 보면 취재대상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불가근 불가원'이라 할까. 현장에서 실제 취재가 이뤄지고 있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게 유능한 취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