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에서 발생한 비행기 육탄테러의 원인은 점점 커지고 있는 세계의 빈부격차입니다" 장 클로드 베르텔레미 프랑스 파리1대학 국제경제학 교수(46)는 9.11 테러의 근본 이유를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빈부격차라고 못박았다. 빈곤은 한 국가의 사회불안과 내전, 심지어 국제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을 낙엽이 흩날리던 지난 주말 파리1대학의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선진국의 제3세계 경제개발 지원이 효과적인 국제테러방지책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테러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은 군사적 공격과 테러집단의 돈줄을 끊는 것에서 머물기보다는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 대담=강혜구 파리특파원 ] ------------------------------------------------------------------ -지난 9월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한 테러공격을 어떻게 봅니까. "사건 발생 후 연일 다양한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회교와 기독교 간의 문화충돌이란 주장이 있으며 또 한편에서는 미국의 편파적인 중동지역 정책 결과란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같은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 원인이 세계 빈부격차 심화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빈곤에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발생한 미 대사관 폭탄 테러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참사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리카의 미 대사관 테러 사건에도 연루돼 있습니다. 아프리카 역시 거대한 이슬람 지역입니다. 이들 국가는 2차대전 후 유럽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하며 친소련적 경향을 보였지만 냉전 종식과 함께 공산주의의 허상을 깨닫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찾게 되었으며 이는 종교이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회교 원리주의자들의 위치가 강화된 것이지요. 현재 아프리카는 세계 경제지도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빈사상태에 있습니다. 국가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는 종교적 유대감이란 공통분모로 선진국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이어지면서 지구촌에서 가진자와 없는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사태 같은 참사가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테러 퇴치를 위한 국제적 협력은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즉, 제3세계 경제개발 지원도 테러방지책의 하나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국제적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일부 수혜국에서는 국제차관이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유용되는 등 부정부패가 경제개발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발 원조금 자체보다는 그 예산이 효과적으로 집행·관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경제개발 우선정책 순위 결정에서부터 산업발전을 위한 기술적 지원, 지속적 개발을 위한 노하우 전수, 자금운영 방법 등이 동반돼야 합니다. 한 예로 아프리카 교육 인프라 원조를 보죠. 국제자금 지원으로 초등학교를 신설한다 해도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매일 등교를 할 수 없고 이어 졸업 후에도 중등교육기관 부족으로 진학할 수 없다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따라서 선진국의 개발 원조정책은 충분한 예산과 함께 개발정책 기술 지원이 뒤따라야 합니다. 제3세계 국가군에 민주화가 낮고 부정부패가 높은 나라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회의적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경제적으로 혼자 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는 선진국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빈곤은 사회불안과 내전 심지어 가진자 에 대한 중오로 발전해 국제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테러조직들의 자금 조달이 국제금융시장을 통해 이뤄졌다는게 밝혀지면서 국제자금이동의 불투명성 문제가 또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토빈세 도입 주장 목소리도 나오고 있구요. "토빈세의 원래 목적은 투기성 국제자본 이동에 과세를 해 외환시장의 불안정을 막자는 것이지 검은돈의 이동을 규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토빈세를 도입한다 해도 불법자금은 과세대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검은 돈은 흐름이 더욱 불투명해 찾아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현재 국제금융시장 환경은 토빈이 국제자금거래 과세안을 제시했던 당시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오늘날 토빈세 도입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국제자금의 이동을 경직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토빈 자신도 토빈세가 당초 자기의 의도와는 달리 왜곡됐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수익 극대화에 급급한 투기성 헤지펀드가 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아시아 금융위기에서도 지적되었으며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토빈세 도입으로 국제금융시장의 투명성 및 안정세를 강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테러자금과 같은 검은돈 거래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조세피난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이는 궁극적으로 국제자본거래의 투명성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도 토빈세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또 반세계화 비정부단체(NGO)들은 국제자금거래 과세에서 거둬들인 돈을 빈국 경제원조에 쓰자고 주장하는 데 이 또한 현실성이 없다고 보십니까. "죠스팽 총리의 토빈세 제의는 선거전략에 불과합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녹적연합 사회당 정부의 분열을 막기 위한 전략이지요. 또한 현 정부 정책방향에 불만을 갖고 있는 전통적 사회당 지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자는 계산도 들어있습니다. 사회당 정부 각료인 로랑 파비우스 재경부 장관조차 토빈세 도입의 비현실성을 지적한 바 있듯이 조스팽 총리가 정말로 토빈세를 도입할 의향이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반세계화 단체들의 토빈세를 통한 빈국 경제개발 지원 주장도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세계경제의 변경지역 국가들의 경제개발을 위해 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금 자체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 자금이 집행되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국제사회는 돈이 없어 빈국을 도와주지 못하는게 아닙니다. OECD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과 개도국 지원금 규모를 비교해보면 이는 예산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의 이기심과 의지 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테러 참사로 오는 11월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개최될 예정인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연기되거나 장소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WTO 각료회의는 예정대로 열려야 합니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에게 그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흔들림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꼭 개최돼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다자간 무역협상 필요성 그 자체입니다. 오늘날 무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볼 때 WTO가 추진하는 새로운 교역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개도국 경제 발전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개도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보호무역주의이지 세계화가 아닙니다. 농산물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도국의 경우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유럽연합의 자국 농경 지원금 등의 무역장애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뉴라운드 협상은 선진국의 입장만 앞세운 게 아니라 다자간 무역체제 참여국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무역질서입니다" -하지만 지난 시애틀 각료회의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번 회담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간 의견차가 워낙 커 모두가 만족하는 균형적 합의도출까지 그 과정은 복잡하고 길 것입니다. 지난 99년 시애틀 각료회의는 상정의제 사전조정이 충분치 않아 회담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란게 예상됐지만 참 우스운 꼴로 끝났습니다. 회의장 바깥에는 선진국 소속 NGO나 노동조합 로비단체들이 몰려와 고성을 지르는 바람에 개도국 관계자들은 이들의 시위에 눌려 자신들의 의사를 제대로 표시하지도 못했지요. 이와 함께 회담장 내에서는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이 아닌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주도하는 등 세계무역기구의 리더십 부족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오는 11월로 예정된 도하 각료회담은 시애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성적이고 균형있는 세계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기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 < bellissim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