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근로자들이 국내 산업현장의 저변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은 반월 시화 남동 구로 성수동 등 기업체가 밀집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속속 스며들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는 극심한 인력난 때문. '실업대란 속 인력난'이라는 기현상 때문에 산업의 뿌리가 어느새 이들 몫이 돼 버렸다. ◇ 얼마나 들어와 있나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해 대략 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약 20만명의 외국인은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불법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9만여명(14개국)은 기협중앙회를 통해 들어온 산업연수생이고 일부는 수협중앙회 건설협회 해운조합 등을 통해 국내 산업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나 산업연수생 중에도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협중앙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94년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 9월 말까지 기협중앙회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연수생은 약 16만9천명이며 출국한 연수생은 약 7만6천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가운데 2년간의 연수를 거쳐 한국어 등 기능시험을 통과한 뒤 국내 기업에 취업(1년 기한)한 근로자는 약 7천3백명, 연수중인 외국인은 약 3만6천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약 5만명은 연수중 이탈했거나 기능시험에 떨어져 본국으로 떠나야 하는데도 한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의 절반 이상이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 왜 외국인 근로자인가 =한마디로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인쇄업체 S사. 고품질 인쇄물을 생산하고 있는 이 회사는 이런 품질을 지키기 위해 창업 후 오로지 내국인만을 채용해 왔다. 그런 이 회사도 최근 4명의 외국인을 뽑았다. 이 회사의 K 사장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지난 두달 동안 대학과 공업고등학교 취업알선센터의 문을 두드렸으나 결국 원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반월공단 이구산업의 최사철 전무는 "중소기업은 경기 침체보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더욱 힘겹다"고 말했다. 생산현장에 도대체 사람이 오질 않는다는 것.이 회사는 추가로 10여명이 더 필요하지만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 대우는 어떤가 =이들이 받는 월평균 임금은 남자의 경우 79만4천원, 여자는 76만2천원으로 내국인 생산직 근로자의 70%를 넘고 있다. 이들에게는 보너스가 없는 대신 숙식이 제공되며 사망시 3천만원까지 보상해 주는 상해보험, 2백만원 보상한도의 체불방지 보증보험 가입 등의 혜택이 부여된다. 한 관계자는 "외국인 연수생들이 한국에서 받는 임금은 본국의 임금과 비교할 때 20배 가량 높다"며 "이들의 생산성을 감안할 때 결코 낮은 것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연수생들의 경우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작업지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문화.종교적인 차이로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 노동의 질 측면에서 내국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 이탈자가 골치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한다고 인력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현장에서 도망치는 근로자가 줄을 잇고 있어서다. 반월공단의 Y사는 외국인 근로자를 한때 22명이나 고용했으나 절반 이상이 도망쳐 제대로 인력배정을 못받고 있는 형편이다. 이탈 근로자(불법체류자)가 발생하면 그 수만큼 신규배정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의 동일제지도 비슷하다.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3명 확보하고 있지만 2명만 채용하고 있다. 반월공단 내 외국인을 쓰고 있는 업체는 3백79개. 이들의 상황은 대동소이하다는게 이곳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외국인 근로자들 스스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한 외국인 근로자는 "한국에 오기 위해 5백만원 정도의 소개료를 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하루 12시간 일할 경우 받는 월급은 1백만원 정도. 생활비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해도 1년은 소개료 갚기에도 바쁘다. 남은 1년을 더 일해도 몫돈을 모을 수 없어 불법체류자의 길을 택한다는 것. 정충세 동일제지 총무부장은 "본국으로 돌아가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고 일단 귀국하면 한국에 다시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해 불법체류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성태.박준동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