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터뷰] 오마에 겐이치 <日 경제평론가>..중국 대비못하면 종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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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경제태풍 대비 못하면 한국은 종속" ]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한국의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 급팽창은 블랙홀이 돼 아시아 국가들을 또 다른 경제위기로 몰아 넣을 것입니다. 한국은 이제라도 산업구조를 새롭게 정비하고 새 각오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국 이야기만 꺼냈다 하면 독설과 비판을 누그러뜨리지 않아 논란의 대상이 돼온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58)는 4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따가운 일침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성장을 누리고 있는 중국이 아시아 경제의 블랙홀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진단하면서 어느 아시아 국가도 중국발 태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일본, 대만의 극동 3개국 중에서도 한국이 중국 태풍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을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이 통과경제(Pass Through)체질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노사문제에서 산업구조와 대외개방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에 관한 쓴소리를 거침 없이 털어 놓는 그를 '오마에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대담 = 양승득 도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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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인터뷰 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한국경제가 어렵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달라진게 없습니다.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에서 빌린 돈을 모두 상환하고 위기를 완전 극복했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위기가 닥쳐 오고 있습니다.
위기의 그림자를 한국민들이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 큰 위기란게 무엇입니까.
"중국발 태풍입니다.
중국의 초고성장은 블랙홀이 돼 아시아 국가들을 한꺼번에 덮칠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슈퍼 경제대국 중국의 가공할 파워를 견뎌내지 못하고 영향권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 국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에서 중심을 잃고 헤어나지 못하면서 경제적 종속상태로 전락할 것입니다"
중국발 태풍이 왜 한국에 특히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봅니까.
"이유는 한국의 경쟁력 자체에 있습니다.
아시아중 동남아는 사실 화교가 경제를 지배하고 있어 이미 중국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대만은 사정이 특이합니다.
천슈이볜 정권이 표면적으로 규제하고 있어 그럴 뿐이지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대만은 중국에 대한 최대 투자국입니다.
이념대립 문제만 해결되면 대만은 홍콩보다 훨씬 더 중요한 중국의 금융센터 기능을 떠맡고 자연히 조화를 이루며 공생할 것입니다.
일본도 중국태풍의 영향을 피할 순 없겠지만 공작기계 로봇 등 고부가가치의 팔 물건이 있고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있으니 아주 빨려들어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중국이 세계로 수출하는 상품의 상당수는 중국에 투자한 일본 기업들이 만드는 것이어서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열매가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무엇이 있습니까.
미국 일본시장은 중국에 빼앗기고 있으며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상품 또한 갈수록 늘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그다지도 힘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기본적으로 통과경제(Pass Through) 체질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부품은 일본에서 수입한 후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식입니다.
산업의 뿌리가 취약하다는 말이지요.
중국은 부품산업도 기초가 튼튼하고 소프트웨어 등 응용기술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계는 어쩔수 없이 수입하지만 기간부품은 전부 자체적으로 만들어냅니다.
도쿄의 오타구나 오사카지역의 동오사카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중소기업의 부품 메카지만 중국에는 이에 못지 않은 중소기업 거점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값싼 자국산 부품을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즉시 조달해 완제품을 만들어 내니 경쟁국들이 배겨낼 재간이 없지요.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과 대만 경제는 굉장히 역동적이고 힘이 넘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반대였습니다.
산업 기반도 그랬고 각종 인프라도 엉망이었고.
그러던 것이 이제는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저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인정합니다.
그러나 중국발 태풍이 몰고 올 위기는 지난 97년의 것과 다릅니다.
강도와 충격에서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97년 위기는 헤지펀드가 일으킨 금융위기라고 하지만 앞으로 올 위기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질서를 요동치게 만들고 판도를 새로 짜게 할 강진이지요.
한국민들이 절감하지 못할 뿐입니다.
일본도 아직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위기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말해 주시죠.
"현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위기 원인은 크게 세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정부의 문제로 정부는 경제운용 방향의 잘못이 있었다면 국민들에게 지금이라도 솔직히 털어놓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국가 만들기에 나서자고 호소하는 것이 옳습니다.
중국 일본 등 주변 경쟁국들부터 바로 보자고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업에 관한 것으로 외환위기후 제일은행을 비롯한 많은 한국기업이 외국자본에 팔렸지만 구미와 일본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한국 기업을 꾸려 나가는게 너무도 힘들다는 것이 지배적 의견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세계화'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세계화를 계속 외쳐대 왔지만 한국민들의 마음속 세계화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외부에 의해 강요된 세계화를 마지못해 따랐을 뿐입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같은 위기들을 한국민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는 무엇 때문입니까.
"개방과 노사문제입니다.
겉으로는 개방했다지만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이 속마음은 완전히 열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예전에는 일본이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IBM 등 외국 자본이 들어와 성공한 사례는 한 둘이 아닙니다.
노사문제의 경우 노동조합이 기업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조합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구별이 안갈 때가 많습니다.
도를 넘어선 분규는 회사와 조합 모두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텐데.
노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외자는 한국을 탈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경영자들도 기업하기 편한 중국으로 가고 싶은데 정부의 눈을 의식해 대놓고 말을 못할 뿐입니다"
한국의 위기탈출 해법을 알려주시죠.
"국가 지도층과 매스컴 국민들 사이에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겁을 먹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으라는 얘기입니다.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고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부 기업 노동조합 등 각계각층이 모두 솔직히 마음을 열어 놓고 의논해야 합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민이 일치단결해 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까?"
산업적 측면에서 본 한국의 활로는 무엇입니까.
"중국과의 직접 경쟁은 곧 한계에 부닥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만의 경쟁력 있는 틈새를 찾아내 특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 중국과 손잡고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힘을 합쳐야 경제질서 재편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관광산업의 경우를 한번 보죠.
한국은 일본인, 특히 젊은 일본인들에게 최고의 매력있는 여행 관광지입니다.
한국붐이 불붙었기 때문에 한.일 간의 쓰라린 과거사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아무 편견, 선입견도 갖지 않고 너도 나도 한국을 가보고 싶어 합니다.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지면 자꾸 가고 또 돈도 쓰게 마련입니다.
일본인들이 주머니를 열어 젖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황금알 같은 산업을 놔두고 무엇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산업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지요.
일본에서는 가격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 중국산 부품과 일본의 기술, 유통망을 결합시킨 신업태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안경 체인업체인 조후(Zoff)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는 한국산 렌즈에 중국산 테를 사용해 다른 일본제 안경의 절반 값에 팝니다.
하지만 품질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일본 시장을 이렇게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묘안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한국도 중국 태풍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경제적 파워를 계속 확대해 나갈 실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는 힘이 너무 달립니다.
일본 수준의 기술, 중국에 버금가는 코스트 경쟁력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시장규모도 문제입니다.
남북한이 통일된다 해도 인구는 7천만명 수준입니다.
중국의 동북 3성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어정쩡한 규모와 실력이지요.
한국은 앞으로 1년반 정도가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기간중 중국이 지금까지의 성장 스피드를 늦추지 않는다면 판세가 어떻게 뒤집힐지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습니다.
경제적 변화에 관한 한 중국의 1년반은 한국의 수년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도 중국의 스피드에 새까맣게 뒤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한국은 다음 정권이 탄생되기 전까지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권이 할 일이 5배로 늘어납니다"
한국에 대해 너무 비관적 이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을 더 심각하게 보는 것 같은데.
"경제가 병들어 있기는 일본도 매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수천조엔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불량채권 문제가 시끄럽지만 그래도 전체 여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대에 불과합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외치는 개혁플랜의 취지는 백번 옳습니다.
하지만 정치권 내부의 이해관계와 관료 사회의 저항등에 비춰 볼 때 제대로 될지 의문입니다.
국민들은 불황이 장기화된 탓인지 상당히 무기력해져 있습니다.
힘든 일을 기피하고 책도 딱딱하고 어려운 것은 읽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쓴 책 '보이지 않는 대륙'은 10개국 이상에서 동시 번역돼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출판되지도 않았습니다.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죠.
90년대 초만 해도 (내가 저술한) 헤이세이유신, 신국가론 등이 내용은 어려워도 1백만부 이상 거뜬히 팔렸었는데.
지금의 일본인들은 그러한 책을 읽을 의지와 능력이 없습니다.
만화나 주간지만 읽으려 합니다.
인재를 키우지 않은 일본은 일등 국가가 아닙니다.
정치, 경제, 관료 시스템도 일류가 아닌 판에.
이대로는 일본도 내리막길을 면할 수 없습니다"
< yangsd@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