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다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빗발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정부가 경제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섣부른 개입이 경제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밀튼 프리드만(M.Friedman)은 '샤워장의 바보'라는 비유를 들어 정부 개입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음을 경고했다. 샤워꼭지를 처음 틀 때는 으레 찬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사리가 있는 사람은 조금 지나면 따뜻한 물이 나올 것을 알고 기다린다. 반면에 찬물에 기겁해 온도를 높이려고 샤워꼭지를 힘껏 왼쪽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물이 너무 뜨거워지자 그는 이제 샤워꼭지를 힘껏 오른쪽으로 돌린다. 이렇게 샤워꼭지를 이리저리 틀다보면 찬물, 뜨거운 물의 세례를 피할 수 없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일정 기간의 시차가 필요한데 이를 무시하고 부양책과 안정책을 조급하게 반복하면 경제가 안정될 틈도 없이 요동치게 된다는 비유다.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정책을 보노라면 프리드만의 비유가 연상된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1일 금통위가 콜금리를 연 4.0% 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한데 있었다. 그 직후 국고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0.32%포인트나 급등했고 국채선물은 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다. 추석연휴 기간중 미국이 비행기 테러 사건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해 금리를 크게 인하하자 국내 투자자들은 국내 금리도 낮아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금리 동결이 발표되자 채권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금리가 급등한 것이다. 그 이후 한은이 신축적 금리 정책을 재확인하는 등 긴급 진화에 나선 뒤에야 시장금리는 불안한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이러한 소동의 일차적 책임은 미국 금리가 움직이면 국내 금리도 따라서 변하리라 기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투기 행위에 있다. 그러나 금리동결 정책 발표 이후 금통위의 긴급 대응을 보면 금통위의 결정이 오히려 시장교란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경기 침체가 염려되는데 왜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금리 인하가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판단하는 것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며 책임이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 금리동결을 발표했다면 시장이 새 정책에 적응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시장이 새 정책을 믿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금리는 단기적으로 과잉 반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금통위는 금리 급등에 놀라 새 정책을 발표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콜금리를 신축적으로 조절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시장금리를 낮추려고 1조5천억원의 통화를 풀었다. 이쯤 되면 시장 참여자는 금리동결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정책은 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차가 필요하다. 그 사이에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경기조절 정책은 오히려 시장 교란요인이 될 위험이 있다.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채권연구원 이사 rhee5@plaza.snu.ac.kr > ------------------------------------------------------------------ 알림 =그동안 매주 화요일에 연재해온 '노택선의 경제다이제스트'를 끝맺고, '이창용의 경제읽기'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