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화정책 '독단'과 '신중' .. 강형문 <한국은행 부총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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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부여해야 하는지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반영,많은 나라들은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했다.
독립성 문제를 다룰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 해서 아무런 제약 없이 독단적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국민경제를 건강하게 살찌우려는 경제정책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재정정책 환율정책,그리고 일반적 경제조치들과 정합성을 가져야 하며,그러자면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이 보다 큰 책임을 지도록 여러 견제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도 권한강화에 상응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앙은행 독립은 '정부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from government)'이라기보다 '정부내에서의 독립(independence within government)'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상호협조는 반드시 필요하지만,그 전에 두가지 만큼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통화정책의 최종 결정권한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있다.
한국은행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통위는 매월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
여기에는 기업 금융회사 뿐 아니라 정부의 견해도 포함될 수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여러 채널을 통해 경제정세와 정책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그렇지만 통화정책에 관한 결정은 금통위가 여러 견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내린다.
이는 개정된 한은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둘째는 통화정책을 대외적으로 공개할 때는 그 방식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에서 공개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뉴스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금융시장이 정책대상이기 때문이다.
주가 금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가격변수다.
거래 당사자들은 서로의 기대와 행동을 주시하는데,특히 금융시장의 가장 큰손인 중앙은행의 정책의도와 행동은 모든 시장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앙은행은 공개시장조작과 정책방향을 암시하는 공개 발언조작(open mouth operation)을 적절히 구사해 시장과 의사를 소통한다.
금융시장은 기대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매우 신중히, 그리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금융시장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기본적 원칙은 시장을 혼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비록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견해가 있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한 목소리(one voice)를 내야 한다.
법제 정책운영 인사 및 재정면에서 완벽한 독립성을 갖춘 유럽중앙은행이 비판 받는 이유도 정책위원회 위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서 시장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아닌 정부나 정치권에서 공개적인 목소리가 나온다면 시장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왜 그런가.
중앙은행의 결정이 정부의 공개적 언급과 일치한다면 설사 그것이 우연이었다 하더라도 중앙은행은 신뢰를 잃는다.
만약 중앙은행의 결정이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이를 경제정책의 난맥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더구나 정부의 공개적인 언급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히 계산하지 않고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금융시장이라는 깨지기 쉬운 그릇을 별 생각 없이 다룰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자명하다.
중앙은행 내부에서건,중앙은행과 정부의 사이에서건 바람직한 통화정책 방향이나 경제정책간 조화 문제에 대해선 사전에 토론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결정은 중앙은행이 하며,금융시장과의 의사소통도 잘 짜여진 시스템하에서 중앙은행이라는 하나의 통로를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염려하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줄여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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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