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1백20개국 5천여개의 매장에서 매년 1억벌 이상의 옷을 판매하고 있는 세계 굴지의 의류기업. 에이즈 환자의 시체나 죽은 병사의 피묻은 군복 등 충격적인 광고사진으로 이름난 캐주얼 왕국. 그에 반해 해마다 선보이는 1천5백여종의 신제품 광고는 전혀 하지 않는 괴짜회사.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기업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베네통 그룹의 설립자 루치아노 베네통(66) 회장이 22일 한국을 찾았다. 유엔이 정한 "2001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를 맞아 베네통코리아가 기획한 사진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루치아노 회장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연 2조원 매출의 거대패션그룹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자유로운 발상에 의한 창조"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루치아노 회장의 창조와 자유라는 경영정신은 그 유명한 광고 캠페인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지난 80년대 초 이탈리아의 패션사진작가 토스카니와 만난 루치아노 회장은 인종간의 우애와 사랑을 주제로 한 광고를 만들어 냈다. 소비자의 눈을 붙잡는 광고시리즈를 통해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은 더욱 유명한 상표가 됐다. 루치아노 회장 자신 또한 홀딱 발가벗은 채 양손으로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중고의류를 난민에게 보내자는 캠페인을 할 때 였죠. 사진작가가 내가 벗는 것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벗었죠" 루치아노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온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캐주얼 위주의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기 위해 97년 스키용품으로 유명한 노르디카,인라인스케이트의 원조 롤러브레이드,전세계 라켓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프린스,선글라스 킬러룹 등의 회사를 인수했다. 인수의 첫째 조건 또한 "자유와 파격적인 도전정신을 얼마만큼 소유한 회사인가"였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컨설팅회사와의 대화에서보다도 더 많은 전략을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루치아노 회장의 생각이다. 1935년 이탈리아 트레비소의 폰자노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10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고를 덜기 위해 신문팔이를 하는 등 남보다 일찍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어린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루치아노 회장은 55년 막내 동생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판 돈으로 중고 직조기를 한 대를 사들였다. 당시 시장에 나온 스웨터가 단색제품 일색이라는 점과 여동색 줄리아나의 뜨개질 솜씨가 뛰어나다는 사실에서 사업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베네통은 회색이나 검정색 청색이 고작이었던 직물업계에 색채와 환상을 도입했고 젊은이들은 난생 처음보는 컬러스웨터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노력,쉽게 주저하지 않는 자유로운 도전정신이 기적적인 성장의 바탕이 된 것이다. 이때 선보인 컬러 스웨터는 베네통의 트래이드마크가 됐다. 루치아노 회장은 "젊은 세대에게 자기 취향에 맞는 색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우리의 마케팅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자사만의 특별한 색깔을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각 지방에서 사라지고 있는 염료와 색상을 복원하는 노력을 거듭해왔다. 또 후염가공공정이라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과거 60년대만하더라고 스웨터 생산의 대부분은 먼저 털실을 염색한 후 이 털실을 갖고 손이나 기계로 옷을 만드는 선염가공공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 공정은 원재료의 확보나 소비자의 욕구에 빠르게 대응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치아노 회장은 울제품 전문가와 함께 후염가공공정을 개발했다. 염색하지 않은 한가지 실을 가지고 옷을 만든 다음 옷에 염색을 실시하는 이 기법은 싸고 예쁜 컬러 스웨터를 만드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이러한 노하우를 확보한 루치아노 회장은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과 쉴새 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최첨단 시설을 갖춘 물류센터와 20시간이내 베네통이 생산된 제품이 전세계 어느 곳으로나 배달 될 수 있게 항공기편을 이용한 배송방법등을 고안해 냈다. 특히 한번에 20만박스의 의류상자를 저장하고 20시간 동안에 2만5천여 박스를 입출고 시킬 수 있는 물류시스템은 의류산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베네통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80년대 중반. 제일모직 베네통코리아 등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아직도 캐주얼 브랜드의 대명사격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이는 위기 때마다 루치아노 회장이 "한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은 아주 중요한 시장입니다. 부침이 있기도 했지만 경제위기가 지난 후 두자릿수의 판매신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사업가로서 한국 의류산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단 일류 브랜드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수출을 강화하면서 한국 제품을 세계 시장에 알려야겠죠. 해외시장에 활발히 진출해 우선 세계 유행의 흐름과 정보 측면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후발국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은 가족 소유의 지주회사인 에디치오네 홀딩의 이사이기도 하다. 패션사업외에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92년부터 94년까지 이탈리아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 ----------------------------------------------------------------- < 약력 > 1935년 이탈리아 트레비소 출생 1965년 베네통 그룹 설립 회장 취임 1992~94년 이탈리아 상원의원 역임 1994년 베네통 커뮤니테이션 연구센터 설립 1997년 킬러룹,롤러브레이드 등 스포츠용품사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