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중에서도 금융분야의 역차별은 상당히 오랫동안 노골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정부는 최근 국내기업(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늘려주되 4%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공정위가 출자총액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자 '출자총액한도 초과를 허용하되 초과 보유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발표한 발상과 맥이 닿아 있다. 규제를 완화하는 제스처를 보일 뿐, 실상은 규제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회사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시장에서 의결권 제한은 규제가 아니라 '폭력'"이라며 "외자계의 은행 소유가 전면 허용돼 있는 상황에서 10%라는 지분소유 규제도 심한데 의결권 제한까지 하느냐"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동양그룹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서울은행을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동양이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규제의 그물을 뚫고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극히 미지수다. 의결권 제한으로 정부는 대기업의 금융사업은 물론 그룹 전체의 경영전략을 옭아매 왔다. 현행 증권투자회사법이나 신탁업법은 30대그룹 계열 증권사나 투신사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상실토록 해 놓았다. 이 법의 취지는 기관투자가의 역할 증대를 통해 기업 경영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가 전면 허용돼 있고 무수한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30대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사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삼성 관계자는 "이미 외국인 지분이 57%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계열사를 동원해서라도 경영권을 방어해야 할 판인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기관투자가의 건전한 투자행태를 유도하는 것과 의결권 제한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