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려야 나라가 산다] 제3부 : (11) '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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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춘천 베어스타운에서 주한 외국상공회의소 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간담회.
제프리 존스 주한 미 상공회의소(암참:AMCHAM) 회장이 물었다.
"일부 주한 외국기업들은 규모로 볼 때 30대 그룹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30대 그룹에 지정되면 경영상의 많은 규제를 받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제프리 존스 회장의 질문에는 당연히 예외로 인정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었으며 이남기 위원장의 답변 또한 그의 '구미'에 맞게 나왔다.
이 위원장은 "외국기업은 자산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와 관련한 적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은 규모가 커지면 30대그룹으로 지정돼 여러가지 제한을 받는 데 비해 외국기업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돼 이들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불만이 재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공정위에서는 지분구조상의 차이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재계는 역차별이 자칫 안방을 외국기업에 모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 설설 기는 토종 vs 펄펄 뛰는 외자계 =인터넷 포털업체인 심마니는 작년 매출액 4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인데도 30대그룹 계열사라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상의 갖가지 제약을 안고 있다.
반면 이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으면서 시장지배력이 더 높은 야후 코리아는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심마니의 손승현 사장은 "30대그룹 계열사는 벤처지정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창투사로부터 자본유치가 어렵고 조세특례제한법상의 세제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필립스 니코 등 많은 해외합작파트너를 갖고 있는 LG그룹 관계자는 "출자총액한도를 폐지하더라도 한도초과분의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합작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헌조 LG전자 고문은 "기업이 커지는 것 자체를 막는 정책은 다국적 기업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원천적인 투자의욕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올들어 민영화가 완료되면서 30대그룹에 처음 진입한 포항제철은 막강한 자금력에도 불구하고 신규사업 진출이나 전략적 제휴에 상당한 애를 먹고 있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파워콤에 5%의 지분을 갖고 있는 포항제철의 유상부 회장은 "파워콤 지분을 추가로 더 늘리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8천억원에 육박하는 출자총액한도초과분이 추가 투자의 장애물이라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우리 대기업들이 이처럼 신규투자와 기존 투자분 정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자계는 자유자재로 투자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일의 세계적 화학회사인 바스프는 지금까지 총 2조원을 들여 한화바스프(우레탄사업) 효성바스프(플라스틱수지사업) 대상(라이신사업) 등을 인수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전남 여수에 연산 14만t 규모의 TDI(침대 매트리스 소재)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다우 케미컬은 여수 석유화학단지에 세계 최대규모의 폴리카보네이트 공장을 최근 완공했다.
삼성중공업의 지게차 부문을 인수한 클라크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는 창원공장을 글로벌 R&D센터로 육성한다는 계획 아래 내년에 2천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전동지게차 전용 제2공장 설립도 추진중이다.
과밀억제권역인 수도권 진출도 역차별이 심하다.
외자계는 20개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수도권내 공장신설이 허용돼 있는 반면 국내 기업은 여전히 총량규제를 받고 있다.
◇ 기업결합때도 다른 잣대 =외자계는 기업결합 심사 때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미국 질레트는 지난 1998년말 로케트 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시장지배적 위치를 확보했지만 별무리 없이 기업결합을 승인받았다.
비슷한 시기 팝코가 한솔제지및 신호제지의 신문용지 사업부문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작년에 대우차 입찰에 참가했던 현대자동차도 독점 시비에 상당기간 시달렸다.
'세계 6대 메이커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자동차시장에서 우리처럼 자동차산업에 독점 규제를 거는 나라는 없다.
현대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다임러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도중하차해야 했다.
조일훈 기자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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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이희주 산업부장(팀장) 김상철 손희식 허원순 김성택 조일훈 이심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