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이 취임 1년 10개월만에 중도하차 했다. 최대주주인 미국 뉴브리지캐피털과의 은행경영전략에 대한 시각차 등으로 인한 문책성 인사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영업기반 축소, 부실여신 증대, 구조조정 미흡 등 경영 성과가 기대에 못미쳤기 때문이란 것. 특히 부실여신과 관련해 대주주로부터 사퇴권고를 받았다는 점은 국내 다른 은행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호리에 행장의 전격 퇴진으로 최대 현안과제인 하이닉스반도체 처리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보다 신중해질 전망이다. ◇ 중도하차 배경 =뉴브리지는 이사회도 열기 전에 CEO(최고경영자)를 교체한다고 통보했다. 교체 배경은 대주주에게 이렇다할 경영성과를 가져다 주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해 6월 21조3천억원이었던 제일은행의 총수신은 올 6월말 18조1천억원으로 14.5%(3조1천억원)나 줄어들었다. 이는 비슷한 처지인 서울은행이 같은 기간 수신고가 6천억원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총 여신도 1년새 1천5백억원 줄었다. 은행의 영업기반이 축소됐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물론 수익성은 크게 좋아졌다. 그러나 이것은 부실여신을 예금보험공사가 되사주는 풋백옵션 조항이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뉴브리지는 호리에 행장의 부실여신 처리방침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닉스반도체 여신의 경우 2년전 7백억원에 불과했지만 10월 현재 2천7백5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제일은행은 뉴브리지 본사로부터 지난달 하이닉스 등 문제기업의 여신에 대해 감사를 받기도 했다. 호리에 행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일이 안팎의 제동으로 무산된 점도 대주주 신임을 잃어버린 요인으로 꼽힌다. 전산부문 분사 및 매각, 본점 건물의 명칭변경이 노조 반발로 무산됐다. 일본계 대금업체와의 업무제휴도 금융감독원의 반대로 좌절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높여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서는 현 경영체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대주주측이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호리에 행장은 "사임은 전적으로 내가 결정했다"며 대주주와의 불화설을 일축했다. 또 하이닉스의 지원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호리에 행장은 스톡옵션 행사를 위한 최소 근무기한인 2년을 채우지 못해 권리를 부여받은 4백12만8천7백75주(행사가격 9천8백34원)의 스톡옵션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 향후 경영 =제일은행은 이날 "새로 행장을 맡게 될 코헨 이사는 기존 기업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비자 및 소기업 금융에 중점을 두는 은행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행장교체로 인해 기존의 경영방침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금융계는 그러나 기업여신 처리, 금융당국과의 관계, 노조문제에 대해 경영진들이 좀더 강경한 자세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실 호리에 행장은 올해 초 회사채 신속인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에 대해 금융당국 및 다른 은행들과 사사건건 대립해 오다 최근 들어 다소 유화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하이닉스에 대한 1천억원의 신디케이트론 및 1천억원의 CB(전환사채)인수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새 경영진은 그간 어정쩡한 입장이었던 하이닉스에 대한 신규지원에도 과감히 반대의사를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