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달러라이제이션'이 국제금융시장의 화두(話頭)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채택한 국가는 파나마와 에콰도르를 포함해 10여개국에 이르며 아르헨티나 캐나다 멕시코 칠레 등도 '달러라이제이션'을 검토중이다. 미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배로 교수가 얼마전 한국에 대해서도 원화를 포기하고 달러를 공식통화로 삼을 것을 권고, 관심을 끈 적이 있다. '9.11 미국 테러참사' 이후 로버트 먼델, 폴 크루그먼 등 유수한 경제학자들이 일제히 세계 공동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달러라이제이션은 더 한층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먼델 교수는 최근 "아시아 지역에 달러와 연계된 공동통화 창설문제가 검토될 시점이 됐다"고 언급하면서 "그 첫 단계로 홍콩 달러를 달러라이제이션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모으고 있다. ◇ 달러라이제이션의 득실 =달러라이제이션을 단행한 국가는 독자적인 통화 발행을 중단하고 전적으로 미국 달러에만 의존, 물가와 통화가치가 안정되면서 대외신인도가 제고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개도국들은 외자 도입에 적지않은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경제적으로 미국에 예속돼 정체성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독자적인 화폐발행이 불가능해 짐에 따라 일종의 조세수입으로 간주할 수 있는 화폐발행 차익(seigniorage)이 소멸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된다. 동시에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은행 스스로 파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 향후 전망 =중남미 지역에서는 미 달러 통용이 보편화되는 추세다.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모든 예금의 60% 이상을 달러가 차지하고 있다.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도 달러사용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문제는 달러 채택국의 중앙은행들을 대신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맡아야 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라이제이션이 지금 당장 실현되기에는 적잖은 현실적 난관이 있지만 이번처럼 테러사태와 개도국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