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자협회가 23일 오전 워싱턴DC에서 개최한 조찬강연회.로버트 죌릭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초청연사로 나섰다. 그는 이날도 부시 대통령이 의회의 간섭을 덜 받고 통상협상을 할 수 있도록 신속협상권한(TPA·일명 패스트트랙)을 부활시켜야 한다며 기업들의 지지를 당부했다.무역자유화를 확대해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 제도의 부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국 철강제품이 들어와 미 철강산업이 피해를 봤다고 판정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발표가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앞에 그의 주장은 빛을 잃고 말았다. 그의 주장과 ITC의 판정결과만을 보면 국제무역에 관해 미 행정부가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론 무역자유화를 외치면서 대내적으론 자국 산업보호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글렌 허바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도 이날 '테러 이후 세계경제'에 관한 기자회견을 통해 TPA가 교역확대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의 발언 역시 ITC 판정에 대한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등의 강한 반발로 희석되고 말았다. 상당수 미국 언론도 이날 미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이들은 철강제품이 대량 수입되기 시작한 98년 이후 미 철강회사 25개가 파산신청을 할만큼 철강업계가 위기라는데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들은 미 철강업계가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 교역상대국 철강기업들이 효율적 경영으로 수출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었다. 일부 언론은 이번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선에서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철강업계와 노조를 의식한 판정이었다는 분석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다음달 카타르 도하에서 새로운 교역질서를 만들기 위한 각료회의를 연다. 통상정책에서 나타난 미 행정부의 두 얼굴에 대해 교역상대국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