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아이들 눈, 어른 눈..김병주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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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일을 내다보기는커녕 오늘도 어제의 일들이 되풀이되리라 여기고 그냥 살아간다.
그러나 시대를 구분짓는 계기는 있게 마련이고,그것은 동시대인들이 그저 그런 일들로 간과하기 쉬운 일들의 누적으로 준비된다.
9월11일 테러사태는 시대의 전환을 예감케 하는 중대사건으로 보인다.
이것을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기로 하자.3세기 무렵 흑해 서쪽 지방에 거주하던 고트족(게르만족의 일부)이 동ㆍ서 고트족으로 분리돼 서고트족들은 4세기에 다뉴브 강변으로 진출해 로마제국 변경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중국의 세력확장으로 일어난 종족이동의 도미노 현상으로 훈족에게 삶의 터전을 잃게 돼 서고트족은 다시 서진해 발칸반도를 횡단,이탈리아 반도 근처에 이르렀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와 화친을 맺고 용병노릇을 하기도 했던 이들은 황제가 죽자 아라릭 1세를 추대하고 이탈리아 본토로 진출해 드디어 410년에 로마를 침공ㆍ약탈하는데 성공했다.
2년 뒤 412년,이들은 이탈리아를 떠나 골(오늘날 프랑스) 서남부와 스페인을 정복하고 톨레도를 중심으로 왕국을 건설했다.
이 왕국은 711년 이슬람을 믿는 무어족들에게 무너진다.
로마제국은 어찌되었나.
로마제국은 동ㆍ서로 갈리고 455년 로마가 다시 반달족에게 노략질당했다.
476년 드디어 비문명인들의 간단없는 공략에 시달리던 서로마제국이 붕괴됐다.
크고 작은 국가는 흥망성쇠의 과정을 밟는다.
특히 제국은 국가성립ㆍ세력확장ㆍ확장의 한계ㆍ도전,그리고 쇠망의 과정이 뚜렷하다.
소련 해체 이후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도 세력확장의 한계점에 도달해 도전을 받고 있는 단계에 이른 느낌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는 우리의 반응은 어떠한가.미국 피습 직후 '싸다,고소하다'는 원초적 감정 표현을 자주 들었다.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는 미국인에 하늘의 응징을 말하는 기독교 원리론자들도 가끔 만나게 된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미국의 친 이스라엘 노선 비판론도 듣는다.
미ㆍ영국 반격 후 아프간 희생자 발생을 규탄하는 반미시위대도 있다.갑자기 이슬람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간 우리의 오해가 많았던 이슬람문화에 대해 관심이 고조된 점은 다행스럽다.
천문학 수학 건축 예술 등 이슬람권의 수많은 기여가 저평가돼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감정적이거나,기독교 원리적인 언행을 삼가는 것이,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중립적인 것이,아프간 희생자들 못지 않게 미국인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관심과 동정을 가지는 것이 이성적 반응이다.
한국인은 해외자원을 수입ㆍ가공해 다시 수출해 얻은 부가가치를 먹고 산다.
우리의 생존ㆍ번영을 위해서는 자원ㆍ상품ㆍ자본ㆍ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
이러한 세계가 존속하려면 국제사회에 법과 질서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현재 국제법의 집행과 질서유지에 미국의 영향이 지대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족감정이나 관행에 어긋나는 대목이 없지 않다.
지난 십수년 간 추진돼온 세계화라는 것도 미국식 제도와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일반화시키는 과정이라는 비평도 유효하다.
문제는 대안이 있는가,있다면 그것이 우리 국익에 이바지하는가이다.
탈레반과 유사 집단들이 승리해 우리에게 그들의 대안이 강요되는 세계를 가정해보자.다른 종교와 믿음에 대한 관용,이질적 생활양식에 대한 이해,여성지위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안이 부재할 뿐 아니라,미국의 세계패권은 짧아도 반세기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인식을 철저히 해야 한다.
향후 미국주도하에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다만 세계화의 그늘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빈곤은 모든 극단행동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9월11일 테러는 전환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조짐일 것이다.세계화는 속도감은 떨어질 것이나 방향은 불변할 것이다.많은 논객들이 예상하는 중국의 세계패권국 도전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판단된다.한반도가 중국 그늘에 편입되는 상황이 현재보다 국익에 도움된다는 보장도 없다.감정노출을 줄이고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어른스런 국민이어야 우리의 국익이 신장된다.
어른다운 어른이 있어야 나라가 산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