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가 장기불황 조짐을 보이면서 '이러다간 잃어버린 10년을 탄식하고 있는 일본처럼 속수무책의 경제 파탄을 겪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게 됐다. 얼마전만 해도 정부는 구조조정이냐 경기부양이냐 하는 정책 택일의 문제로 여유 있는 고민을 하면서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풀면 곧 경기가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미국 테러전쟁에 의한 영향도 있지만 국내 경제의 움직임이 일본 경제를 닮아가지 않나 하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한국과 일본은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국민총생산(GNP) 중심의 경제이며 소프트산업보다는 하드산업 중심이고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기업 구조로서 정부 주도형 경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2000년 경제 불안을 넘어 2001년에는 경제 위기를 맞이하고 2002년에는 파국에 직면함으로써 2003년에 파산한다는 아주 자극적인 제목의 책 '2003년 일본국 파산'(아사이 다카시 지음,신장철 옮김,사람과책,9천원)이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로 주목받고 있는 이 책은 두 권으로 돼 있는데 제1편은 '경고편'으로 지난해 12월에 나왔고 제2편은 '대책편'으로 올해 5월 출간됐다. 국내판은 숭실대의 신장철 교수가 제1편을 번역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제1장 큰 오산,제2장 8백조엔의 위협,제3장 사라지는 국민자산,제4장 공황인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인가,제5장 일본은 1천3백조엔의 채무초과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국 파산의 시나리오를 '일본이 현재 돌이킬 수 없는 지점(point of no return)을 지나 95%의 확률로 국가 파산의 나락으로 추락한다'는 것으로 시작했다. 결론에서는 로마제국 이후 국가가 파산하면 세가지 현상 즉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대폭적인 세금 징수,국민 재산의 파산이 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생존전략은 제2편인 '대책편'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어렵고 복잡한 경제문제를 아주 알기 쉽고 간편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결코 망하지 않으며 세계 제일의 부동산 신화가 계속되고 정부 정책으로 디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는 세가지 오산이 오늘의 장기 불황과 8백조엔의 국가 부채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국민의 금융자산이 1천3백조엔에 달하고 있는데 이 중 부실 채권이 4백조엔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총 부채가 일본 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 한계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1천조엔)를 이미 초과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국가 재정의 적자 논리와 그 통계 수치로 예언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금리를 내리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서도 세금은 내리겠다는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제3적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국가는 기업과 가계와는 달리 적자나 부채가 곧 파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쉽게 망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도 아직까지는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단계이기는 하다. 이종훈 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