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목(裸木) .. 황태랑 <대한교과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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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랑 < 대한교과서 대표이사 trwhang@daehane.com >
박수근 선생의 그림을 본다.
그의 그림은 단조롭다.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과 머리에 함지를 인 여인이 있다.
함지를 인 여인은 조금은 추운 듯 팔짱을 낀 채 걸어가고 있고,그 여인을 바라보는 아이를 업은 여인의 눈길은 한없이 따뜻하다.
그 사이에 나목(裸木)이 있다.
그림 속 여인네들의 삶이 결코 풍요로울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색도 무채색이고 나무엔 잎이 없다.
그러니 겨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은 더욱 외롭고 추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아이는 여인의 등에서 잠이 들어있다.
1962년 작 '나무와 두 여인'이다.
그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겨울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자신이 살던 시대의 삶의 모습과 그 모습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가장 강렬하게 그리면서도 결코 흥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그림이 따뜻하다기보다는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의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의 나목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
출판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경제 전반이 아직 많이 힘들다.
계절로 표현하면 겨울이고,안타깝게도 나목이 되어 서 있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더욱 걱정되는 것은 힘들다는 이유로 잃어버리는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이다.
생존만이 최고의 가치요,최선의 이유가 된다면 그건 야생동물의 세계와 다름 아니다.
IMF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의 문화가 바뀌었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달라졌다.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그때가 되면 나목에도 파란 잎이 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의 풍경 속에 사람이 없거나 사람이 서 있다 해도 사람들 사이의 눈길이 따뜻하지 않다면 차라리 그 풍경을 거부할 것이다.
아무리 생존 자체가 힘들다 해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만큼은 끊임없이 그리고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박수근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며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출판 한길만을 고집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