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洋 < KAIST 교수 / 테크노경영대학원 > 기술기회의 소진과 투자조절의 실패 등으로 동시 불황에 접어들고 있던 세계경제가 테러와의 쉽지 않은 전쟁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경제는 못다한 구조조정을 뒤로 한 채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주요 정책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고,정치는 경제를 내팽개치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기업들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외톨이가 되어 저마다 생존을 위한 위기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경영환경의 악화와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나라경제건 기업경영이건 당연히 위기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기전략이라 하여 무조건 남은 마늘을 챙겨 굴속으로 들어가는 '동면전략(冬眠戰略)'이 돼서는 곤란하다. 즉 위기경영전략의 수립과 추진에도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기업들의 위기경영전략은 비용절감,투자감축,현금확보라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전략 아닌 전략 일색이며,이중 상당 부분은 일상적으로 추진됐어야 할 것들이다. 위기경영전략은 생존이라는 소극적 목적과 함께 장기적인 경쟁 우위의 확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지향해야 하며,전략의 수립과 추진에 있어서는 특히 경쟁과 성장에서 나타나는 '경제의 상대성 원리'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첫째는 '위기의 상대성 원리'다. 이는 개별 기업이 경제환경의 악화로부터 받는 위기 내지 고통의 정도가 상대적이라는 원리로서,초일류 또는 주변적인 기업들보다는 어중간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시장수요 감소로 인한 충격이 중위권 경쟁력 기업에 대한 수요 감소로 가장 먼저,그리고 크게 나타나며 높은 명성 또는 싼값으로 버티는 초일류기업과 하위권기업의 타격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둘째는 '생존의 상대성 원리'다. 이는 기업의 생존 및 경쟁은 절대적인 경쟁력의 우열이 아니라,상대적인 경쟁력의 우열에 의해 좌우된다는 원리다. 따라서 위기경영전략의 수립과 추진에 있어서는 우선 경쟁기업들의 경쟁력과 전략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적인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실천전략을 세워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는 '성과의 상대성 원리'다. 이는 경쟁력 우위의 성과가 수확체증적으로 증가한다는 원리로서,생존의 상대성 원리가 생존을 좌우한다면 경쟁력의 상대적 격차는 기하급수적인 경영성과의 차이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특히 경제불황기와 이에 이은 경제회복기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경쟁기업들의 위기경영전략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경쟁력의 상대적 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며,이 점이 단순한 축소경영이 아닌 때로는 과감한 확장경영,특히 기술인력 선점 등의 전략이 필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경제의 상대성 원리는 중위권 경쟁력을 확보한 이후 더욱 독자적인 경쟁력 확보에 매달려 중위권 경쟁력 시기를 최대한 단축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나라경제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밀려난 남미 국가들이 그랬고,우리의 경우도 어중간한 경쟁력에 자만해 경제환경 악화에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한 중위권 경쟁력 시기로부터의 탈피가 지연되면서 결국 심각한 위기에 노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경제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경쟁력 수준이 대체로 중위권 수준인 우리기업과 이들로 구성된 우리경제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할 우려가 높다. 이는 앞으로의 경쟁양상이 기본적으로는 짧은 기간에 쉽게 확보될 수 없는 지적 또는 기술적 역량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고,특히 우리의 경우 중국의 상대적인 성장 회오리가 만들어 내는 블랙홀에 빨려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극적이고 관행적인 내용이 아니라,경제의 상대성 원리에 입각해 중하위 정체산업 부문에 대한 과감한 재편과 미래 유망산업 부문에 대한 초일류화를 동시에 포함하는 위기경영전략이 우리기업과 나라경제에 절실한 때다. 이와 함께 교육 등 사회 각 부문에 퍼져 있는 우리의 '평준화 지향적'사고에서도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drcylee@kgsm.kaist.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