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수입제품으로 인해 자국 철강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최근 판정함에 따라 미 행정부는 긴급수입제한조치, 이른바 세이프가드조치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관련, 얼마전 미 무역대표부(USTR) 죌릭 대표는 자국 철강업계에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들 조치는 미 행정부내 이견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오히려 '북치고 장구치는 격'일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상 세이프가드조치가 정당하다면 수입국은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부담을 수반해야 한다. 이것은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조치와 달리 정상적 수입에 대한 예외적 조치인 만큼 설득력이 없을 경우 상대국의 보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미 철강산업이 입었다는 피해의 인과관계나 수준판정만 가지고도 수출국들이 WTO 제소를 거론하는 마당에, 반발을 다소나마 무마하기 위해 죌릭 대표가 구조조정을 언급했을 수 있다. 실제로 구조조정이 수반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그런데 구조조정 측면에서 보면 더 황당한 것이 반덤핑조치의 남용일지 모른다. 덤핑은 수입국 입장에서 보면 수출국의 불공정 행위로서 이를 시정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해당 산업의 구조조정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미국의 철강이나 반도체업계는 물론이고 최근 반덤핑조사를 들먹이는 일본 반도체업계가 그렇듯 반덤핑조치는 실제로는 특정분야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는 선진국 업계가 즐겨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도대체 덤핑이란 것이 무엇인가. 수출가격과 정상가격의 차이에 따른 불공정 행위지만 당장 단기적인 환율변동만 따져도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게다가 정상가격이란 것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원가이하 판매도 비정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제품의 평균비용이 일정기간 후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이면 초기 판매가격은 얼마든지 평균비용 이하로 설정될 수 있다. 또 경기침체기에 고정비용 회수마저 어렵다면 어느 기업이든 일정기간 원가이하 판매는 불가피할 수 있다. 물론 독점적 덤핑이나 약탈적 의도의 덤핑까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반덤핑조치는 이를 구분하기 보다는 애매함을 이용해 보호속에서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WTO 반덤핑협정의 개정 요구가 높은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