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실패와 정부역할 .. 金一燮 <한국회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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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인정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시장실패가 없었다.
진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기 보다는 선진국,특히 미국의 시장경제를 잘 이용하는데만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는,금융자원을 수익성 있는 산업에 효율적으로 배분하기에 실패한 금융기관들의 건전성 상실과 외화 유동성 위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그 이면에는 과보호된 국내시장에서의 초과이익을 믿고 세계시장에 진출했으나 가치파괴의 경영만을 입증하고 막을 내린 몇몇 재벌의 반시장적 경영의 실패가 있었다.
이러한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정부는 1백4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해 시장에 개입했고,IMF와 세계은행이 처방한 기업정책을 집행,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회계의 투명성 강화 등 시장질서를 교란한 원인의 일부를 해소했다.
그러나 정책집행과정에 대한 정치적 간섭과 함께 기업문제의 인식과 해결능력의 부족 및 책임소재에 대한 공방 등으로 인해 대우 현대와 같은 경제부실의 근본원인을 해결하는데 필요이상의 시간과 비용을 소모했고,공적자금 규모를 과소하게 추정해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은 기대한 만큼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이라는 훌륭한 통치이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오해해 시장실패의 처리까지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정책방향의 착오가 나오고 있다.
본래 시장에서의 자유란 절제된 자유,규율있는 자유를 의미하며,시장질서의 조정자인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규칙을 뜻한다.
시장경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적 재산권제도,계약제도,정보의 공유 및 감시제도가 필수적인 외부요소이며,시장 내부로는 기업가 정신과 건전한 도덕률이 필수적인 요소다.
윤리도덕을 무시한 무절제한 금전욕을 천민자본주의라 하며,시장경제의 발전과 지속에는 도덕자본과 함께 신뢰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정부는 시장경제의 하부구조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를 확립하는 동시에 도덕적해이나 이해상충과 같은 시장규율의 위반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이를 반드시 응징해 시장의 규율을 지켜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
비록 적기를 놓치기는 했으나 대우자동차를 GM에,현대투신을 AIG에 인수시키기로 어렵게 결정한 뒤에도 우리경제는 하이닉스반도체라는 불확실성의 볼모가 돼 있다.
하이닉스의 실패는 빅딜의 인위성에 의해 일찍이 예견됐으며,반도체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을 처분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현대 경영진의 확대경영으로 촉진됐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이닉스에 대한 여신을 계속 늘려온 채권금융기관들은 반기 말 현재 자기자본 약 5조7천억원에 부채총계 약 11조원(이 중 약 7조원이 금융기관 차입금),2001년 9개월 간 3조4천억원의 매출에 3조7천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흰코끼리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128메가D램의 현물시장가는 1달러에 머물고 있으며,전세계의 경쟁자들은 현금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하이닉스가 도산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일본업체들은 반덤핑조사를 요청하고 있고,미국정부는 하이닉스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을 경고하고 있으며,중국은 반도체 생산공정 인수를 미끼로 해 0.18미크론의 미세가공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며 시장실패의 대표적인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개입불가 원칙만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 건은 이미 개별 금융기관 차원의 문제해결 단계를 넘어섰다.
지금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는 신규자금 지원을 반대하는 은행에 대한 대출금 70%의 탕감과 30%의 출자 전환,1∼2개 생산라인의 ASIC Fab 전환,일부 생산라인의 국내외 매각 또는 합작,기술투자와 설비투자를 위한 과감한 신규자금 지원(1조원 정도로는 태부족),이에 따른 추가 공적자금 조성의 검토 등을 포함해 본격적인 전략적 회생방안에 대한 신중하고도 신속한 판단이 요청된다.
회생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좌우간 빠른 시일 내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결정은 정부의 몫이다.
sikim@kasb.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