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4:25
수정2006.04.02 04:28
1916년 4월28일 이탈리아 페라라 근교 레나조 디 센토에서 태어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일찍이 기계에 관심을 가져 볼로냐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2차 세계대전중 이탈리아 공군 수송부에서 근무하다 영국군의 포로로 잡혀 차량 정비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농기계를 만들다 작은 창고에서 본격적인 트랙터 사업을 시작했다.
빠른 성공 덕에 창고에서 시작했던 사업은 곧 큰 공장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 시기 람보르기니는 피아트 차량을 튜닝하기 시작했고 자신을 위해 제작한 피아트 토폴리노로 1948년 레이스에 출전한다.
하지만 차는 사고로 파손되고 만다.
1949년에는 드디어 기존 군차량을 기본으로 제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해 제작하는 방식을 갖추게 되며 람보르기니 트랙터 공장을 설립, 자신의 트랙터를 설계.제작하기 시작했다.
곧 람보르기니 트랙터는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다.
람보르기니는 트랙터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중 한명이 된다.
람보르기니는 이 시기에 농업기계 제작에서 호화 스포츠카 제작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데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페라리 제작자인 엔초 페라리에 자극받았을 것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언젠가 람보르기니가 페라리 새차의 소음에 대해 불평하자 페라리는 "당신은 트랙터에 매달리고 나는 스포츠카 제작에 관심을 가질 뿐"이라며 트랙터를 제작하는 사람이 스포츠카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투로 잘라 말했다.
람보르기니는 거기에서 자신도 스포츠카를 직접 제작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후 페라리에 대적할 만한 차를 만들어 낸다.
람보르기니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지만 그의 아들 안토니오는 자동차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1973년 모든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해 이탈리아 엄브리아주의 포도동산에서 여생을 멋진 와인 생산에 바쳤다.
그의 사유지 '라 프로리타'에 있는 거대한 저택은 테니스코트와 람보르기니 차를 전시하는 박물관,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그는 1993년 2월20일 7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손을래 < 수입자동차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