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내년 1월로 예정된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백지화하는 내용의 건강보험법개정안을 국회에 전격 상정함으로써 직장·지역 건보 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민주당이 반발하고 있지만 여소야대의 의석분포로 볼 때 야권이 밀어붙이기를 시도해 통과라도 된다면 당장 건보재정종합대책의 전면수정이 불가피하고 나아가 건보 조직의 재분리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당초 정부 여당이 건보통합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모든 가입자의 보험료를 단일기준으로 부과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살리고 국고지원을 최소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안되고 지역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율도 28%에서 50%로 늘어나 통합의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흑자였던 직장건보가 통합추진 이후 방만한 운영으로 급속히 적자로 돌아섰음을 생각할 때 차라리 직장·지역건보를 분리시켜 선의의 경쟁을 시키는 것이 재정건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나라당의 건보 재정통합 백지화 추진이 단순히 당리당략적인 정치게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야당의 재정통합 반대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먼저 건보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건강보험의 재정파탄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대안 없이 무조건 통합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나와서는 정치공세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이미 진행된 건보 조직통합 등의 경제적 사회적 부담 역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통합 계획을 백지화한다면 직장보험료 인상률은 당초 예상했던 8∼9%보다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지역건보는 정부지원율이 50%로 늘어나 흑자로 돌아서게 되지만 국고지원이 없는 직장 건보의 경우 2005년까지 누적적자가 2조1천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내년 1월로 예정된 재정통합을 밀어붙이는 것도 무리지만 여야합의로 만들어낸 건보통합의 구도를 충분한 논의도 없이 갑자기 허물어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건보 재정통합에 관한 모든 논의는 최우선적으로 건강보험의 회생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사실 정부 지원을 빼면 지역이든 직장이든 적자를 면치 못할 판에 통합 또는 백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여야는 이 기회에 다시한번 머리를 맞대고 앉아 파탄난 건보재정의 회생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