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이 최고 경쟁력] 1등 기업.1등 상품만 '생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1세기는 신산업과 신기술이 발현하여 과학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강대국이 나타날 전환기다"(재정경제부가 펴낸 '2000년 경제백서' 중에서)
국가 경제력을 떠받치는 원동력으로서 과학기술 경쟁력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다.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전세계 시장이 하나로 묶이면서 '1등 상품' '1등 기술'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다른 방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말의 외환위기 상황에서 보듯 나라가 어려울 때나 수출이 안되고 경제 상황이 곤경에 처할 때면 우리는 늘상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부족을 주된 문제점으로 지적해 왔다.
동시에 보다 강력한 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기업과 정부에 요구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종합적인 기술 경쟁력은 아직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연구.개발 투자액 등 양적인 투자를 꾸준히 늘려 왔음에도 질적인 경쟁력은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다.
이는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과학기술경쟁력 평가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IMD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연구.개발 투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2.68%로 경쟁국인 대만의 1.98%나 싱가포르의 1.80%에 비해 크게 높았다.
그러나 단순한 투자 금액이 아니라 한 국가의 종합적인 기술경쟁력을 나타내는 순위 평가에서는 한국(22위)이 싱가포르(9위)와 대만(12위)에 크게 뒤처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서 미국과 일본은 각각 1위와 2위에 올랐다.
산업자원부가 얼마전 발간한 '2000년 산업자원백서'에서도 열악한 한국의 산업기술력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산자부는 미국의 산업기술력 수준을 1백으로 잡았을 때 일본은 70.19, 독일은 46.30, 한국은 6.5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의 기술경쟁력이 미국의 20분의 1, 일본의 11분의 1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산자부는 이같은 기술 경쟁력의 열위가 정부나 기업 차원의 기술개발 투자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었고 절대적인 투자 규모가 작은데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산자부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많은 연구 노력끝에 개발된 기술들이 제대로 사업화.실용화되지 못한다는 점을 꼽는다.
연구 성과물이 상품 품질을 높이고 기술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단순히 연구실의 보고서로 머무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종국적으로 이같은 문제가 실용기술의 저변을 넓히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산자부 기술표준원 분석에 따르면 정부 출연 연구소와 대학 등 공공 연구기관이 보유한 연구성과의 사업화 성공률이 10% 미만이다.
아울러 국내 기업이 산업재산권을 제대로 활용하는 비율도 24%에 불과하다.
박정우 기술표준원 연구관은 "새로 개발된 기술을 생산현장에 적용해 생산성 향상과 생산공정의 합리화, 신제품의 상품화를 이끌어내고 이 과정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익창출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연구.개발투자가 대만이나 싱가포르보다 많지만 종합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활용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구개발 투자가 지나치게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투자 영역도 전기.전자 등 특정 분야에만 집중된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산업이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 몇몇 특정 산업만에 몰려 있는 이유다.
제조업 상위 20개사의 연구.개발투자가 전체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자료)에서 한국은 67.60%로 미국(33.43%) 일본(40.73%)에 비해 크게 높다.
그만큼 기술개발 투자의 저변이 좁다는 얘기다.
투자 분야별로도 전기.전자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 균형적인 발전을 해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산업분야별 투자 비중에서 전기.전자가 전체의 59.8%로 절반을 훨씬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기계.금속(16.2%) 화공(15.0%) 등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김동철 기술표준원장은 "산업기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의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고 사업화로 인한 이득이 다시 더많은 기술개발 투자를 불러오는 선순환 구조를 원활히 작동시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21세기 경제성장의 동력은 기술대국으로 거듭나는데 있다"며 "이를 위해선 기술개발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 가는 가운데 개발된 기술의 실용화와 사업화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