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기업 살린 경영.경영인] 전선기 <기아특수강 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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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회사를 하루빨리 정상궤도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상당하다.
여기에 더해 법정관리기업을 '골칫거리'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 각계의 곱지않은 시선과 수시로 맞닥뜨려야 한다.
이것도 생각보다는 고역이라는게 당사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선기 기아특수강 법정관리인 겸 대표(63)가 느끼는 심적 고통은 여느 법정관리인들의 몇갑절에 이른다.
자신 회사가 부실화된데 간접적이나마 책임을 지닌 '구(舊)경영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전 관리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산업은행을 거쳐 지난 82년 기아특수강의 전신인 대한중기공업에 입사해 15년간 임원으로 회사에 몸담았었다.
지난 97년 10월 재산보전관리인 신분이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언제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는 곧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이어진다.
재산보전관리인으로서 그가 처음 착수한 일은 6명의 실무 부서장을 모아 '정상화 기획위원회'를 발족시킨 것.
기아부도사태를 맞아 만신창이가 된 회사의 부실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99년 2월 결국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 인가를 받았다.
다음 절차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
기존의 48개 부서를 24개로 절반이나 줄이고 정리해고를 포함해 전직원의 34%인 8백여명을 내보냈다.
임금동결과 상여금 반납 등 종업원들의 자발적인 희생이 뒤따른 것은 물론이다.
전 관리인이 생각하는 법정관리 기업 회생의 '제1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
그가 말하는 '공격'이란 다름아닌 기업의 잠재된 수익창출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주는 투자를 가리킨다.
"법정관리기업이라고 금융권 눈치만 보며 웅크리고 있어선 안됩니다. 꼭 필요한 부분엔 투자도 해야죠"
그의 말처럼 법정관리 3년차의 기아특수강은 조기 영업이익 실현으로 축적한 자금을 설비투자에 과감히 쏟아부었다.
작년 초부터 지난 6월까지 1년 반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설비합리화 투자에 들어간 자금은 총 4백30억원.
이중 1백80억원은 법정관리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해외CB(전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오래전부터 필요성을 느껴 왔던 설비합리화 투자를 법정관리 기간에야 단행했습니다. 법정관리가 오히려 회사의 내실을 다지게 한 계기가 된 셈이죠"
투자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기아특수강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백33% 증가한 72억원.
투자를 통한 원가절감 실현은 결국 가격경쟁력 제고와 수출 확대를 통한 매출액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전 관리인은 경쟁업체인 창원특수강과 상호 중복되는 사업영역을 자율조절함으로써 '공생'의 길을 연 주인공이기도 했다.
창원특수강은 공구강과 스테인리스강에, 기아특수강은 기계구조용강과 봉강에 주력키로 한 구조조정은 업계간 '자율빅딜'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직원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회사를 만들 겁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물러나 한동안 찾지 못했던 산이나 마음껏 오르렵니다"
후배 직원들에게 언제나 금전적으로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는 그의 작은 바람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