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학연구원의 이재락 박사(48)는 '소신'과 '오기'의 과학자로 통한다. 어렸을때부터 과학서적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던 그는 법대 진학을 바랬던 부모님의 뜻과 달리 서울대 재료공학과에 입학했다. "입학식이 끝나자 마자 부모님이 6법전서를 들고 오셨습니다. 법대에 진학해서 고시를 봤으면 하는 바람을 버리지 못하신거지요. 법전을 읽어봤는데 흥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죄지은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 뿐이었으니까요" 프랑스 꽁삐엔느 기술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86년부터 한국화학연구원에 근무해온 이 박사의 오기가 발동한 것은 지난 1990년. 국내 한 과학자가 우리나라에서는 탄소섬유를 국산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데 발끈한 것이다. 탄소섬유는 무게가 가볍지만 내열성,내충격성이 뛰어나 골프채 등 스포츠용품과 건축자재, 항공우주 및 자동차 산업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외국에서는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태광산업에서 개발자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탄소섬유 사진 네 장을 놓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물어보더군요. 일종의 면접시험이었던 셈인데 프랑스 유학시절 탄소섬유를 분석해봤기 때문에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었습니다. 1년간 공장 설비를 8번이나 뜯어고치면서 일본 제품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탄소섬유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박사는 고분자 재료 분야의 전문가다. 최근 기능성 유리섬유와 에폭시 수지(접착성과 내화학성이 우수해 건물 도장.보수 등에 활용되는 재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올들어 고기능 다용도 유리섬유를 개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고기능성 유리섬유를 전량 수입해왔다. 최근에는 유리섬유와 에폭시 수지를 혼합시켜 딱딱하게 만들 때 보통 열을 가해왔던 방식에서 탈피,빛을 쪼이는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빛을 가하면 낮은 온도에서도 작업이 가능하고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박사는 재료 분야의 전문지식을 역사해석에 활용하고 있다. 조만간 '재료로 본 한국사'란 책을 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했는데 청나라 군사가 강했던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하기 위해 고양대로를 확보하려 했는데 이 곳에서 청나라 군사와 전투가 벌어졌어요. 백병전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쇠도리깨"인데 문제는 군수부정 탓에 조선군의 쇠도리깨에 사용된 나무가 너무 약해 쉽게 부러졌습니다. 결국 조선군은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머리 보다는 성실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자가 업적을 남기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체코의 프라하에는 중세때 만들어졌던 연구시설을 아직도 과학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연구에만 전념하게 해줬던 것입니다. 스위스는 우리보다 자원이 훨씬 적고 여건도 좋지 않지만 1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습니다. 성실하게 앞만 바라보고 나아간 탓입니다" 이 박사는 물질이 구조를 형성할 때 발생하는 '프리볼륨'(자유공간)을 조절하는 방법에 도전하고 있다. 에폭시로 이 기술을 구현하고 있으며 연구가 완성되면 에폭시 수지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