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는대로 방독면과 항생제,서로 통화가 가능한 라디오를 지급한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나 방해로 문제가 생기면 비행기를 출동시켜 페르시아만에 대기중인 항공모함으로 대피시킨다"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투입된 특수부대요원들이나 받음직한 이 같은 지침을 받은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파견될 미국 대표단이다. 이들은 9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WTO 각료의회를 앞두고 워싱턴에서 1일 철저한 안전 교육을 받았다. 이날 교육에는 많은 의원들과 기업인들도 참여했지만 이들은 정부 권유로 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회의에 참석하려 했던 의원은 경제·금융관련 소위원회 소속 의원 중심으로 3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강도가 높아지는 아프간 공격으로 미국인들의 안전이 위협받으면서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샌더 레빈 의원 1명을 빼고는 모두 취소할 태세다. 기업인들도 대부분 포기했다. 2년전 시애틀에서 열렸던 각료회의는 세계화반대 시위로 무산됐다. 이번 회의만은 성공시켜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뉴라운드)를 창출해야 한다는게 미국의 강력한 의지다. 로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대표는 뉴라운드가 세계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다닌다. 이날 외신기자센터에서 도하 회의에 관해 사전 브리핑을 한 USTR 관계자도 침체상태인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서라도 도하에서 새로운 교역질서에 관한 결실을 거둬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도하 회의의 전망도 밝은 것만은 아니다. 미국 스스로 불안해 하는 것처럼 언제 어떤 형태로 테러리스트나 시위대들의 공격과 방해가 있을지 모른다. 의제를 놓고도 선진국간 또는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이견이 적지않다. 특허권이나 지식재산권 분야에선 개도국들이 선진국들과 여전히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간, 미국과 일본간에도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카타르 도하로 가는 길은 시애틀 회의 무산 이후 2년만에 열렸지만 유례없는 테러전쟁까지 겹쳐 적지않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