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맹수를 만나 피한다는 것이 그만 독사가 우글거리는 구멍으로 뛰어내리게 됐다. 떨어지는 순간 다행히 나무뿌리를 잡아 목숨을 건졌는가 했는데,어디선가 사각사각 소리가 나 위를 쳐다보니 쥐가 뿌리를 갉아먹고 있는 게 아닌가. 빠져 나갈 방법이 없을까 하여 사방을 둘러 보니 눈앞의 한 곳에서 꿀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를 핥아먹으며 잠시나마 죽음의 공포에서 잊는다. 톨스토이 단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소·벤처기업들이 어렵다. 사무실 한쪽에 침대를 놓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동고동락하던 직원을 내보낸 뒤 회사문을 닫거나 자살하는 기업인이 줄을 잇고 있다. 까닭은 간단하다. 국내외 경기가 냉각됐기 때문이다. 내수경기가 좀처럼 침체의 계곡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해외경기마저 급전직하다. 정부는 중소·벤처기업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신용보증을 확대하고 자금지원을 늘린다. 지원받은 기업들은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꿀물을 빨고 있는 사람처럼 잠시나마 도산의 공포를 잊는다. 그렇다고 꿀물이 치유책이 될 수는 없다. 중소·벤처기업을 살리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을 찾으려면 먼저 원인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중소기업인·고위공무원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업인이 건의했다. 몇년 동안 애써 제품을 개발했는데 정부는 외산만 살 뿐 국산품을 사주지 않는다는 호소였다. 그러자 고위공무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납품 실적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품질을 어떻게 믿느냐는 생각이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국내외 시장을 외산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국산화했는데 납품 실적이 있을리 있겠느냐고 하자 그는 방법까지 일러줬다. 외국에 먼저 납품해서 그 실적을 제출하면 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외국의 거대 다국적기업과 경쟁해서 제품을 개발했는데 외국에서 먼저 납품실적을 쌓으라는 것은 국산화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문제는 이같은 시각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자국 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은 대기업이나 정부가 우선적으로 사준다. 품질이 다소 미흡해도 키워준다는 뜻에서 구매하고,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밀어준다. 그러다보니 일본 중소기업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도요타자동차가 초우량기업이 된 것은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장주의 경제의 전형이라는 미국에서도 정부가 중소기업제품 구매를 위해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미국 대통령은 중소기업청장과 독대하며 의견을 듣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는 업체들이 힘들여 제품을 국산화하면 외국기업들이 독과점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격을 낮춰 융단폭격을 한다. 또 정부 관계부처에선 품질 낮은 국산제품을 구매했다고 담당자가 문책을 받는다. 물론 처음 국산화한 제품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국산을 사주지 않는다면 중소·벤처기업들은 희망이 없다. 지도하고 격려하여 품질을 높이게 해야 중소기업이 산다. 그래야 이를 조립해 수출하는 대기업도 경쟁력이 생길 게 아닌가. 중소기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건 기업이건 소비자건 이들이 개발한 우수제품을 많이 사줘야 한다. 특히 발명특허품이나,국산신기술제품 우수기계제품 등 최소한 공인된 제품만이라도 구매를 대폭 늘려야 한다. 단체수의계약과 같은 부분적인 지원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꿀물이 아니라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 수 있는 튼튼한 밧줄이다. '국산제품 구매 확대'가 바로 구명줄 역할을 한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