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산업혁명은 물리학에 기초했다. 20세기는 논리학에 근거한 컴퓨터 혁명기.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시대일까. 미래학자들은 이 질문에 게노믹스(genomics)를 바탕으로 한 '바이오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향후 바이오 산업의 역량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준이 다시 갈라질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선진국은 이런 전망에 맞춰 벌써 수십년전부터 바이오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산학연 기술 집적지를 조성하는 한편 자국 특성에 맞는 기술개발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유전자 조작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하고 바이오 기업의 창업을 제도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바이오 산업은 아직 태동기에 불과하다. 국내 출원 특허물질의 83%를 외국인이 독식할 정도로 원천.핵심기술 분야가 외국에 심각하게 종속돼 있다. 정부가 바이오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그 토대가 미약하기만 하다. 21세기 국력을 좌우할 바이오 산업을 짚어본다. 왜 바이오인가 =바이오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무한한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조사기관인 DRI에 따르면 오는 2005년까지 생물산업은 연평균 22%씩 성장할 전망이다. 유망 산업인 반도체(9.4%) 메카트로닉스(9.1%) 신소재(6.9%)의 2~3배를 넘는 신장률이다.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것도 특징이다. 바이오 기술 하나를 개발하면 식품 자원 환경 농업 의약 해양 엔지니어링 등 다방면에서 쓸 수 있다. 게다가 바이오 산업이 인류의 질병과 식량난 등을 해결할 수 있고 환경친화적인 산업이란 점에서 기존 제조업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 바이오 시장 현황 =세계 바이오 산업은 지난 90~97년 연평균 32%씩 커졌다. 지난해 5백40억달러에 이른 이 시장은 올해 7백40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오는 2013년에는 무려 2천1백억달러의 거대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시장을 놓고 선진국의 선점경쟁이 치열하다. 각국은 바이오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정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지 오래다. 미국 독일 등은 이미 개발된 기술의 산업화에 중점을 둘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 이웃 일본도 정부 주도로 바이오 투자를 크게 늘리고 금융 및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조만간 유럽과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Catch-Up' 전략을 구사하며 바이오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열중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인 인도조차도 바이오 인력양성에 나서고 있다. 또 DNA칩의 연구와 개발을 위해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유전자 센터를 세웠다. 국내 바이오 산업 =이제 걸음마 단계다. 시장규모 자체가 지난 99년 6천3백27억원으로 세계 시장의 1.2%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4.2%선이다. 기술력도 선진국의 약 60% 수준에 불과하다. 생물엔지니어링(35%)이나 제품의 안전성 평가기술(30%) 등 산업화 기술은 더욱 뒤처져 있다. 특히 안전성평가 등 산업화 기술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 특허 출원이나 생물유전자 확보 등 바이오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지식 기반도 취약하다. 그나마 창업 열기가 지속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정도다. 삼성 LG SK 두산 등 대기업과 제약회사 벤처기업 등은 앞으로 5년간 약 4조원 이상의 투자계획을 잡고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들도 2조원 가까운 돈을 바이오 산업 육성에 투입할 예상이다. 99년 70여개사였던 바이오벤처 기업도 올해말엔 7백여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창업 열기가 뜨겁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는 오는 2010년께 한국을 세계 6위권의 바이오 선진국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특히 바이오 산업을 주도해야 할 바이오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바이오산업은 R&D(연구개발) 중심이라는 특성상 벤처기업이 주도한다. 미국도 유수의 바이오 기업이 대부분 신생 벤처기업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는 더욱 과감하고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한문희 바이오벤처협회 회장) 유진사이언스의 노승권 사장도 "바이오 산업은 지속적인 투자로 어느 정도 기술이 축적된 다음에야 빛을 볼 수 있다"며 "한국의 바이오 투자규모가 선진국들의 1백분의 1 수준인 현실이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