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물처럼 몸 눕히고 싶지 않으랴/사람의 평생이란/직립의 쓸쓸한 발걸음을 견디는 것,/물결은/제 몸을 낮춰 수평을 얻고/우리는 꼿꼿하게 몸 세워야 한다/(중략)/벽돌을 쌓듯/척추를 세워가야 한다/마침내 저 물처럼 몸 눕힐 때까지"("산정호수" 부분) 오정국씨(46)의 세번째 시집 '내가 밀어낸 물결'(세계사)은 물과 뼈,수평과 수직의 이미지로 둥근 화음을 이뤄낸다. 평평함과 꼿꼿함이 부드럽게 만나는 접점.그곳에서 시인은 우리 삶의 물밑에 흐르는 아픔과 얼룩을 어루만진다. 그동안 블랙홀과 사막,모래무덤을 지나온 시인은 삭막한 도시의 악몽에서 벗어나 '슬프고 아름다운 존재의 얼룩'을 더듬는다. 그가 기체와 고체에 이어 액체의 세계로 들어서는 모습은 몇 겹의 생을 지나온 물살의 무늬만큼 깊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엔 물의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모래도 진흙으로 바뀌었고 돌도 알로 승화됐다. '그 많은 세월/겉돌던 물과 모래,/눈물 방울방울에 뜨겁게 녹아//물도 나를 껴안고/모래도 나를 껴안으니,//허공을 떠돌던 달빛 하나 달려와/상처난 내 몸을 실처럼 풀어내니/몸의 마디마디/물살 환하게 들어앉네//아,숨막히게 뜨거운/뜨거운 해후'('모천' 부분) 그는 산란 뒤의 연어처럼 "이제 오래 참고 견딘 노래를 삶의 물살에 풀어놓고 싶다"고 말한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 '길보다 낮은 곳'에 물이 흐른다는 진리를 편안하게 바라보는 시인.그러나 생은 자주 '비바람에 젖고' 진흙에 얼굴 묻고 싶은 밤으로 질척거린다. '노래를 물처럼 밀어/먼 먼 세상을 적시고' 싶지만 달빛 젖은 산 위의 묘비처럼 생은 '이 지상의 외로운 숟가락 하나'로 서 있는 것이다. 그 뾰족한 현실을 어루만지는 것 또한 물이다. 밀려오는 비애의 물결을 거슬러 '눈물을 훔치고 또 먼 길을 가야 한다'고 시인은 스스로를 추스른다. 그 먼 길의 끝에서 그는 숙명적인 시의 길과 만난다. '누가 저 길을 꿈꾸었던가/남몰래/숨겨놓은/정부(情婦)에게 가는 길/눈먼 치정(癡情)의/시(詩)의 길'('비보호좌회전' 부분) 그는 얼마전 신문사 문화부장 자리에서 떠나 쓸쓸한 전업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부화를 기다리는 알,저 뜨거운 돌 속에/내 혀를 한 백년쯤 묻어두고 싶다'는 그의 절창이 '제 몸에 새긴/번갯불의 무늬'로 아프게 와 박힌다. 글=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