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곽정소 < KEC 회장> .. 4년만에 경영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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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나이 스물여섯에 경영권을 넘겨 받았다.
그는 경험은 없었지만 경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터득해 가며 회사를 무리없이 이끌었다.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15년뒤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는 돌연 모든 업무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최고경영자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무직자(無職者)로서 카레이스도 하고 항공기 운항 면허도 따며 세상을 즐기고 견문도 넓혔다.
전문경영인이 모든 것을 잘 알아서 할 것이라 믿고...
그러나 그게 아니란 것을 안 것은 4년이 지난 올해 6월.
회사는 전문경영인 혼자서는 물론 오너 혼자서도 꾸려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룹회장으로 돌아왔다.
중견 전자 그룹인 KEC(옛 한국전자)의 곽정소 회장.
제일교포 2세인 그는 지난 6월 경영에 복귀한 이후 오너-전문경영인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스스로는 그룹 회장으로서 장기 전략을 구상하고 계열사 사장의 업적을 평가한다.
대신 전문경영인에게 회사의 업무를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4년전 KEC 사장자리를 내놓은 것도 전문경영인들에게 사장을 맡기기 위해서 였지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든지 사장이 되고 싶지 않겠습니까"
곽 회장은 자신이 사장으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임원들의 승진 기회가 그만큼 제한돼 사기가 떨어지고 조직이 활력을 잃게 되지 않느냐고 했다.
얼마전 해외생산 법인장 전략회의에서도 해외법인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현지인에게 승진기회를 부여할 것을 강조했다.
현지인들도 관리자·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자기계발을 하고 그로 인해 회사도 더불어 발전하게 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자동차 부품사업을 키울 생각입니다. 자동차 부품이 전자화 되는 추세여서 전자부품 회사인 KEC로서는 진출하기에 적합하다고 보고 있지요. 현재 만들고 있는 개별 반도체들은 국내 가전회사들이 공장을 모두 해외로 옮기고 있어 국내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곽 회장은 일본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장난감 조립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학창시절 공부보다 모형 선박이나 항공기를 만드는 걸 더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 일본 모형창작물 경진대회에서 자신이 직접 설계한 배로 2등을 차지할 정도였다.
지금도 서울 양재동 KEC 빌딩 27층 회의실에는 길이 1m 정도의 모형항공기와 모형선박.자동차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엔지니어로서 소질을 보였던 그는 도쿄 인근의 무사시(武藏)공과대에 들어가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당시 물리와 기계에 관한한 2등이 서러울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그는 당시 부친이 경영하던 신코트레이딩이라는 무역회사에 들어가 4년간 무역과 경리를 배운다.
"경리업무는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경리 담당자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는 바람에 얼떨결에 맡게됐지요. 여직원한테 실무를 배워가며 밤 새워 일했는데 그 때 배운 경리지식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81년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는 그에게 시련이었다.
물론 부친으로부터 "회사는 막내인 네가 맡아서 하라"는 말을 수시로 들어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26세의 젊은 청년이 맡기에는 회사가 너무 커져 있었다.
더구나 그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자신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마치 혼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말은 강남의 술집 아가씨들이 제일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군요"
아직도 우리말이 약간 서툰 그는 당시의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나는 듯 큰 소리로 웃어 보였다.
그가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것은 경영권을 넘겨 받은지 6년만인 지난 87년이다.
그는 대표이사가 되자마자 전자기술을 창조하는 기업, 국제적 마케팅 능력을 갖춘 기업, 종업원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기업,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으로 비전을 설정했다.
이어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소신호용 소자(SSTM) 세계 1위를 90년대 회사 목표로 내걸었다.
일본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고 연구개발에 주력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KEC는 지금 월 생산량 13억개로 일본 롬에 이어 세계 2위의 SSTM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얼마전 대성산업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유원영 전 회장이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관리는 유 회장이 모두 챙겼지요. 저는 기술과 영업을 맡고요.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면 되고 안되고는 유 회장이 판단해 주셨습니다"
곽 회장은 요즘 회사의 인사제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올해 초 인사전문회사의 컨설팅을 받아 모든 직무를 15단계로 나누어 평가 보상하는 직무성과급 중심의 평가보상제도를 도입했다.
또 직원들의 경력을 소질에 따라 제도적으로 개발해 주는 경력개발 중심의 인재육성제도를 마련중이다.
이 제도가 올해말 완성되면 직무와 성과위?인사제도의 골격이 완성된다.
"회사는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조직과 사람은 변화가 없으면 자연적으로 느슨해지지요. 그래서 최고경영자는 조직에 항상 변화를 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사도 그래서 필요한 것이지요"
변화를 강조하는 그는 최고경영자들은 몇 년마다 교체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대략 4년정도 되면 한번 정도 교체를 생각해 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는 선친 곽태석 회장으로부터 정치로서 회사를 키우지 말라는 주문을 받았다면서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신한은행 설립에 참여한 회사들을 비롯해 모두 2백개사 정도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며 모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회사의 '큰 그림'을 한번 보여달라는 주문에 "회사는 그 경영자의 스케일만큼 커진다"면서 스스로 자기계발에 힘쓸 뿐이라고 말을 맺었다.
박주병 기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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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55년 6월20일생
78년 2월 일본 무장(武臟)공과대 졸업
82년 2월 한국전자(옛 KEC) 상무
87년 11월 한국전자 사장
95년 8월 전자부품기술연구소 운영위원
97년 6월 한국전자 대표이사 회장
98년 2월 한국전자산업진흥회 부회장
99년 2월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 회장
2001년 6월 KEC그룹 회장겸 KEC 등 12개 계열사 대표이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