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은 한폭의 대형 방패연, 3층 데크(스탠드)는 전통소반, 전체 이미지는 마포나루에 드나들던 황포 돛배. 한국의 전통미를 한껏 살린 2002년 월드컵 상암동 주경기장이 10일 마침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상암동 주경기장은 2002년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아시아 최대 축구전용 경기장으로 60억 세계 축구팬의 시선을 집중시킬 곳이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한국 건축예술의 극치라고 평가했다는 월드컵 주경기장을 탄생시킨 주역중 한사람이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그는 상암동 주경기장이 완공된 지금도 수주 당시를 생각하며 가슴벅차해 한다. "입찰에서 지면 옷을 벗는다는 각오로 수주전에 뛰어 들었습니다. 입찰참여 작업에 동원된 인원만 1백여명에 달했어요. 저와 실무자들이 넉달동안 사무실에서 숙식을 함께 했습니다. 그야말로 전투상황이었습니다" 수주경쟁에는 처음에 5개 컨소시엄이 참가했다. 이중 3개 컨소시엄은 자격미달로 탈락하고 결국 삼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과 굴지의 모 건설회사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으로 압축됐다. 이때만 해도 승산은 누가봐도 경쟁 컨소시엄에 있었다. 경쟁 건설회사의 컨소시엄은 시공능력 1위업체에 2,3,5,7위 유명 건설업체가 총망라된 골리앗이었다. 그러나 막상 입찰결과 뚜껑이 열리자 양 사장의 삼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낙찰됐다. 지난 96년 6월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결정이후 '기존 경기장 활용이냐, 신축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신축으로 방향을 잡고 시공사를 선정한 것은 98년 11월의 일이다. 업계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눌렀다'며 놀라워했다. 수주전에서 탈락한 경쟁업체의 사장이 경질됐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양 사장의 말대로 사활을 건 수주전이었다. "따로 경영철학이랄게 없습니다. 엔지니어링업체의 총사령탑은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늦어요. 생각하면서 발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합니다. 그런 다음 결과를 기다린 것 뿐이지요" 다름아닌 그가 평소 생활신조로 지켜온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양 사장의 발로 뛰는 경영은 공사현장이든 수주현장이든 가리지 않는다. 수주 후에는 상암동 공사현장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양 사장 발품은 국내에만 제한돼 있지 않다. 1년에 1백50일 가량은 해외에서 지낸다. 베트남 사우디 중국등지로 수주활동을 펼친다. 석유화학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등 플랜트 공사를 발주하는 고객들이 대부분 개도국의 정부당국이나 공기업 총수들이어서 '직접 영업을 뛴다'. 해외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현재 약 20여건에 달하니 가히 그의 발품을 이해할 만 하다. 발품을 팔아 공략한 대표적인 국가가 베트남이다. 베트남 최초의 가스처리 플랜트를 시공한데 이어 지난해 국영석유화학(PVC) 프로젝트를 수주해 공사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엔 베트남 푸미 비료공장 건설을 따냈다. 그가 베트남에서 따내는 수주건마다 베트남 최초, 최대의 수식어가 붙었다. 최근 천득렁 베트남 국가주석은 방한하자마자 그를 만나 인사를 나눴을 정도다. 양 사장의 해외 수주활동은 삼성물산 뉴욕지점및 독일지점장, 삼성종합건설, 삼성물산 해외사업본부장 경력이 큰 힘이 됐다. "발주사의 CEO든, 국가수반이든, 실무진이든 상대방을 만나는데 주력했습니다. 상대방의 취미 성격까지 파악하면서 인간관계를 쌓았지요.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덕분에 독일어로 직접 수주관련 편지를 썼고 독일가요인 '리드'를 불러제껴 독일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발로 뛴 것만 아니다. 이거다 싶으면 과감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를 내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번 상암동 주경기장 완공이 그랬다. 일본보다 출발이 늦은데다 삼성엔지니어링 컨소시엄에 대한 우려가 뒤따랐다. 주어진 공사기간이 3년으로 짧은 시간이었고 일본은 벌써 사이타마현과 요코하마시 경기장 건설에 착수한 터였다. 삼성엔지니어링이 플랜트 전문업체라는 고정관념도 그를 괴롭혔다. '공장짓던 기술이 과연 통할까'라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결국 양 사장은 두가지 돌파구를 택했다. 일본보다 더 잘 짓고 공기를 앞당긴다는 것이었다. "시공사로 선정된 승부처는 설계였어요. 1백점 만점에 50점이 배정된 설계에서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지요. 방패연, 전통소반, 황포돛배 등 우리민족 고유의 상징물을 형상화한 설계였습니다. 설계대로 시공된다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으로 자신했지요" 공기단축을 위해서는 과감한 공법을 이용했다. 플랜트 건설에 적용되는 '패스트 트랙(Fast-Track) 공법'을 도입한 것이다. 설계와 시공을 단기간 소구획으로 나눠 동시에 병행하는 고급공법이다. 이 공법으로 설계, 자재, 구매, 시공까지 일괄처리해 삼성은 공사기간을 2개월이나 앞당겼다. "제한된 시간에 여러 공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시공능력뿐 아니라 설계.구매.감리가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했습니다. 울산 정유공장, 삼성 반도체공장 등 복잡하고 덩치가 큰 플랜트를 단기간에 건설한 경험과 능력을 십분 발휘한 것이었지요" 양 사장의 결단력은 97년 온나라가 IMF 관리체제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돋보였다. 오히려 공격적인 영업을 펼쳤다. 다른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모기업 건설부문과 통합되거나 사업부문으로 격하되던 시기였다. 양 사장은 국내에서 틈새시장을 적극 발굴해 나갔고 해외에선 동남아, 중국, 중동,중남미로 대체시장을 찾아나섰다. 상암동 경기장 건설, 고속철도 차량기지 건설, 대전지하철 운영시스템 사업수주 등이 국내 틈새시장 발굴로 얻은 성과다. 해외시장에서는 올들어 베트남 비료공장(3억6천만달러), 사우디아라비아 SPC프로젝트(3억5천만달러)를 수주했다. 올연말까지 해외플랜트 수주규모는 자그마치 10억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양 사장의 '욕심'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부문은 환경사업과 중국시장이다. 우선 국내에서는 대기오염물질처리, 하수처리, 음식물쓰레기 처리설비와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중국에서는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를 확대할 계획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 < 약력 > 1940년생 58년 광주고 졸업 65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66년 삼성그룹 입사(중앙일보 공채3기 기자) 68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비서팀장 73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78년 삼성종합건설 해외사업담당 이사 89년 삼성종합건설 본사 해외사업본부장 95년 삼성건설 부사장(해외사업본부장) 96년 삼성물산 부사장(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 96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98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