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글로벌화가 가장 잘 이뤄졌다고 인정받는 소니.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드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소니의 이름을 확고하게 만든 '워크맨'을 개발할 때도 그랬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팔릴 리가 없다"고 반대했다. 회사 바깥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종 순간에 결단을 내렸다. "만약에 3만개 이상 팔리지 않으면 회장을 그만둔다". 그 워크맨은 지금까지 2억개가 넘게 팔리며 그의 결단과 선견지명에 '보답'하고 있다. 'CEO의 결단력'(일본공업신문사 엮음,조양욱 옮김,현대북스,1만5천원)은 '순간의 결단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 책은 일본 1백대 기업의 CEO가 뽑은 '존경하고,모범으로 삼는 경제인' 20명 가운데 7명의 경영철학을 분석한 것이다. 분석대상은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를 비롯 혼다기연공업의 혼다 소이치로,마쓰시타 전기산업의 마쓰시타 고노스케,경단련 회장 도코 도시오,도쿄전력의 기카와타 가즈타카,샤프의 하야카와 도쿠지,캐논의 미타라이 다케시.이들이 맞이했던 위기와 기회의 순간,선택과 결단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림자처럼 보필하는 측근 참모들과의 인터뷰,다른 기업가들의 회상도 실려 있다. 일본을 경제강국으로 이끈 경영자들이 사활을 걸고 내린 결단의 순간은 그야말로 극적이다. 자동차 수리공장 견습공으로 출발한 혼다 소이치로.그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적용한 결단의 원리는 '안되는 일도 되게'였다. 그것은 이른바 '개발혼'의 원천이었다. 전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그는 일본의 기술력으로 영국 자동차 레이스에 출전하겠다는 '맨섬TT 레이스 출전 선언'을 한다. 그러나 석달 후 현지를 시찰한 그는 후회막급이었다. 일본차의 스피드는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이 순간 그의 타고난 승부근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결국 그는 항공기 기체 전문가에게 경주용 자동차의 차체 설계를 맡기는 파격적 조치를 취했다. 혼다 엔진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또 평생 동안 최고를 향해 돌진했지만 '승자의 교만'에 빠지지 않고 '성공의 함정'도 경계했다. 그에게 최후의 결단은 '물러남의 미학'이었다. 그래서 "실패할 때 뿐만 아니라 성공할 때도 반성하라"는 그의 가르침은 사후에도 더욱 빛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역시 위기의 순간마다 고독한 결단으로 난관을 뚫고 나갔다. 50년대 필립스와의 제휴를 성사시켜 가전왕국의 길을 열었던 것도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일이었다. 오늘의 샤프를 키운 '일본의 에디슨' 하야카와 도쿠지는 엄청난 불황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은행의 정리해고 요구를 거절했다. 그의 따뜻한 인간애에 감복한 노조의 자발적인 희망퇴직으로 회사는 다시 살아났다. 나중에 그들을 다시 부른 샤프는 지금까지 단 한번의 인원정리나 급료삭감 없이 '보은의 경영'을 지키고 있다. 이 책은 기업의 CEO 뿐만 아니라 삶의 고비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인생 경영자들의 교과서로도 읽힌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