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8일 '국정전념'을 명분으로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김 대통령은 소수여당의 총재라는 멍에를 벗어나 여야 '등거리'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거야(巨野)의 감세정책 대기업정책 등을 초당적 입장에서 대폭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역으로 건강보험 재정통합,주5일근무제 등 그간 민주당이 밀어붙여온 각종 개혁정책은 대폭 손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당적을 유지하는 만큼 큰 틀의 정책변화는 없을 것이란 정반대 시각도 있다. ◇친 기업정책 나오나=대기업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이란 관측이 강하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민주당의 지원이 없었으면 대재벌 강공책을 펼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간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집권여당의 요구에 정부가 소신을 접은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자민련 정우택 정책위의장도 "여당의 지원을 받지 못해 정부가 기업에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 여당이 '개혁마무리' 국면으로 들어설 개연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 등의 규제를 받는 대기업집단 범위가 자산기준 5조∼10조원 이상인 기업으로 대폭 축소되는 등 핵심규제들이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 강운태 제2정조위원장은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로 당의 입장이 오히려 자유롭다"면서 "중소기업 육성 등 민주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피력,주목된다. ◇재정확대정책 수정 불가피=경기침체 극복방안으로 '감세정책'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법인세율을 현행보다 2%포인트 인하하기로 뜻을 같이 한 상태다. 아울러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1백12조여원)에 대해 야당측의 반발이 거세 삭감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야당측이 "정부 여당이 내년 선거를 겨냥,본예산 대비 12%가 넘는 초팽창 예산을 급조했다"(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 "정부는 내년 경상성장률을 8%로 전제하고 핑크빛 예산을 짰지만 2%포인트 이상 떨어질 것"(자민련 정우택 정책위의장)이라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측이 '2003년 균형재정 달성'목표에 수정을 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내년에 양대 선거가 있는 점을 감안할 경우 예단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여·야·정 정책협의 강화해야=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초래할 부작용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제2정조위원장은 "민주당 내분이 장기화될 경우 국정운영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정협의체제가 느슨해짐에 따라 정책입안 과정이 길어지고 정부정책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민련 정 의장은 "경제문제 만큼은 정치적 색깔을 띠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여·야·정 정책협의회가 조속히 가동,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