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한국과 크로아티아 대표팀 간 경기가 열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는 90분 내내 축구팬들의 함성과 환호가 넘쳐 흘렀다. 멋진 플레이가 펼쳐질 때마다 6만여 관중은 너나없이 박수와 갈채를 보냈고 경기장 밖의 시민들은 TV 앞에서 열광했다. 한국이 골을 넣었을 땐 나라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긴 하지만 A매치(국가대항전)가 열릴 때면 온 국민은 잠시나마 한마음 한뜻으로 화합의 하모니를 이룬다. 내 지역 잘났다고 서로 아옹다옹 다투다가도 경기가 시작되면 하나가 된다. 이게 바로 축구가 갖는 힘이고 매력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가 꼭 2백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32개국 선수들은 내년 6월 자국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룬다. 대회기간 중 연인원 6백억명 이상의 시선이 이곳에 쏠린다. 그만큼 월드컵이 전세계인들에게 미치는 임팩트는 크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이벤트가 아니다. 국가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또한 전세계인들을 상대로 한 거대 비즈니스의 장(場)이기도 하다. 그것만으로 오랜 경기침체와 영일없는 정치권의 이전투구식 싸움에 지친 우리 국민에게 월드컵은 용기와 꿈을 가져다줄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게 틀림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2년 월드컵 특수로 파생되는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함으로써 관광수입 증대에 적잖은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볼때 '월드컵개최=경제성장'이란 등식이 성립된다. 실제로 월드컵을 치른 후 경제사정이 나아진 나라가 많다.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장기간의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왔다. 82년 월드컵을 개최한 스페인은 이후 1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이 3배나 신장되는 효과를 얻었다. 우리도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늘어나는 수출물량을 공급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고,주식투자자들은 치솟는 주가로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국민적 자긍심을 높이고 화합을 이룬 것도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88올림픽은 지금도 우리에게 자랑스런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별로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입장권 판매만 봐도 그렇다.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른 일본의 경우 거의 매진된 상태인데,우리나라는 아직도 판매율이 40%선에 그치고 있다. 정치권 역시 정쟁에는 열중이면서 국운이 걸린 월드컵에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시민단체 기업인 근로자 학생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민 전체가 월드컵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밖에 없다. 대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벌어들이는 건 아니다. 지나친 기대심리는 오히려 성공적 대회를 가로막을 뿐이다. 우리는 5년 전 일본과 공동으로 월드컵을 유치한 뒤 열심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해왔다.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쏟아부으며 경기장 숙박시설 등 대회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닦아왔다. 이제는 국가적 에너지를 결집할 때다. 그래야만 성공적 대회가 가능해지고,한국경제가 재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월드컵 효과를 지속시킬 수 있다. 온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내년 6월 또 한번의 자랑스런 추억을 만들어 보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