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구조조정안이 드디어 가닥을 잡았다. 총 11조원의 부채중 3조1천억원이 출자전환되고 6천5백억원이 신규 지원된다니 하이닉스는 유동성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이닉스의 생존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를 했다고 비난한다. 하이닉스의 파산이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과감한 지원으로 회생의 전기가 마련 됐다고 평가한다. 누가 옳을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후자의 견해가 옳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하이닉스의 채무조정 과정을 보면 채권단 내에서도 서로 다른 의사결정을 한 점이 눈에 띈다. 외환.한빛.조흥.산업.씨티은행과 농협은 출자전환과 함께 신규 대출을 하기로 했다. 신규 대출에 반대한 국민.신한.제일.서울은행 등은 채권의 청산가치만큼 전환사채로 돌려 받게 된다. 청산가치는 원금의 20%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투신사들은 보유한 회사채를 연 6.5% 금리로 3년간 만기를 연장키로 했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평가와 대출 채권총액에 따라 갈 길을 달리한 셈이다. 모든 기관이 운명을 같이할 때 나타날 시스템위험이 분산됐으니 다행스러운 일인데 이는 구조조정촉진법의 덕택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나라의 기업 구조조정은 도산3법(회사정리법.파산법.화의법)을 중심으로 기업의 회생보다 청산에 초점을 두고 운영돼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전후해 부실징후 기업이 급증하면서 채권.채무자간의 사적 계약을 통해 기업의 청산보다는 회생을 지원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보.삼미 처리에 사용된 부도유예협약과 워크아웃이라고 알려진 기업구조조정협약이 이를 위한 제도이다. 금년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촉진법은 이들 협약을 발전시키고 법적 강제성을 부여한 사적 기업구조조정 제도에 해당한다. 구조조정촉진법의 골자는 채권단의 75% 이상이 정상화 방안에 동의하면 나머지 채권단은 이에 따르거나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채권단에서 빠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임승차를 원하는 소수 금융회사가 정상화 방안에 반대하면 시간만 끌다 정상화 시기를 놓치는 워크아웃의 과오를 막기 위한 조치이다. 또한 촉진법 아래에서는 채권행사 유예기간인 3개월 내에 채권단간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법정관리나 회의절차가 시작돼 그만큼 기업의 생사가 신속히 결정된다. 물론 구조조정촉진법은 정부가 채권단에 압력을 행사할 경우 부실기업의 연명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촉진법 시행 이후 코리아데이타시스템스가 퇴출됐고 현대석유화학 쌍용양회 하이닉스 채권단 내에서도 의사결정이 달라진 것을 보면 이 제도의 성공적 운영을 기대해 볼 만하다. 앞으로 사적 구조조정 제도인 구조조정촉진법이 법률적 제도인 도산3법을 보완하는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촉진법을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선 투신권이 과연 고객자산을 기초로 채무조정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또 채권단 75%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된 정상화 방안이라도 법정관리 기준인 67%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면 법정관리 과정에서 나머지 채권단이 이를 따르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촉진법이 법정관리의 사전 정지작업으로서 의미를 갖고 법정관리 기간을 줄여주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채권연구원 이사 rhee5@plaza.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