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그룹 장루이민 사장(張瑞敏.52). 중국을 대표하는 국제급 기업인이다. 그는 요즘 중국에서 '늑대(狼)'로 통한다. 장 사장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해외 '늑대'들이 중국으로 떼지어 들어올 것이다. 해외 선진 기업들은 늑대와 같은 존재다. 중국 기업들은 WTO 가입으로 펼쳐질 무한경쟁에서 자칫 잘못 했다가는 늑대에게 잡혀 먹히고 마는 '양(羊)'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 늑대들을 대처하는 길은 스스로 늑대가 되는 것 뿐이다. 나는 늑대가 되기로 했다" 장 사장이 중국 CCTV와의 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 후 중국 언론은 장 사장을 늑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 사장의 말은 국내에서는 해외 선진기업들과 함께 춤을 추고(與狼共舞), 또 해외시장으로 나가 어설픈 외국 양들을 잡아 먹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 기업인의 포부를 담고 있는 말이다. 장 사장의 해외시장 개척은 최근 들어 빛을 발하고 있다. 해외시장에 있는 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늑대의 모습이다. 장 사장은 지난 달 뉴욕 금융 중심가 맨해튼의 한 오피스빌딩을 매입했다. 매입가는 1천4백만달러. 그는 "하이얼그룹의 미국 본부로 활용하기 위해 빌딩을 샀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뉴욕증시 상장을 위한 포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투자가들에게 하이얼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빌딩을 매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올 상반기 장 사장의 주 활동무대는 유럽이었다. 그는 지난 6월에는 이탈리아의 한 냉장고 공장을 사들였다. 이와 함께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 디자인센터를 건립했다. 파리 샹들리제 거리에 높이 5.5m, 길이 22.5m의 대형 '하이얼' 광고판을 달기도 했다. 유럽시장 공략 수순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것이다. "하이얼의 경쟁자는 GE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하이얼은 GE와 세계 시장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다. 그게 바로 WTO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다" 장 사장의 'WTO관(觀)'이다. 일부 선진 중국기업들의 국제화 정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국제시장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경쟁자끼리 손을 잡기도 하고 외국 기술을 끌어들이는데 인색하지 않다. 중국석유화학(中國石化)과 상하이석유화학(上海石化)은 중국 석유화학업계 최대 라이벌. 두 회사 모두 뉴욕증시 상장업체이기도 하다. 지난 8월 말 중국석화의 왕지밍(王基銘) 사장과 상하이석화의 루이핑(陸益平) 사장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세계 석유화학 업계를 긴장시킬 놀랄만한 소식을 터뜨린다. 중국석화와 상하이석화 영국BP 등 3개 회사가 공동으로 상하이에 합자회사를 설립키로 했다는 뉴스였다. "중국기업의 생산능력과 BP의 기술력을 합쳐 상하이 석유화학단지에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석유화학 업체를 설립하게 된다. 이로써 중국 석유화학 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에 커다란 주춧돌이 마련됐다" 그들은 합자회사 설립의 취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간단히 대답했다.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해서라면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자와는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중국을 '저임금을 활용한 가공단지' 정도로 여기는 것은 1980년대 생각이다. 중국에는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업체가 수두룩하다. 현재 뉴욕 런던 싱가포르 등 국제 증시에 상장된 중국업체만도 20여개에 달한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까지 치면 1백여개가 넘는다. WTO 가입과 맞물리면서 1년 안에 10여개 중국 업체가 뉴욕 증시에 상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뉴욕증시 상장업체인 화넝(華能)국제의 리샤오펑(李小鵬) 사장. 현 전인대(全人大.국회) 상무위원장이자 전 총리인 리펑(李鵬)의 아들이다. 소위 말하는 태자당(太子黨)중 한 명인 셈. 그의 국제시장 진출 야욕은 끝이 없다. 리 사장은 지금 세계 굴지의 전력회사 매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말 매입협상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화넝은 국제 전력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이제 우리는 사업 망을 중국에서 벗어나 해외로 확장해야 한다. 그게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가야 할 길이다" 그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국제시장으로 나가는 중국 기업인들.그들은 지금 WTO 가입을 계기로 해외시장의 어떤 양(羊)을 먹어 삼킬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