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금구좌 假압류 신중히 .. 白泰昇 <연세대 법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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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기업 구조조정촉진법'이 시행되면서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석유화학 쌍용양회공업 등 일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투자신탁운용회사들은 신탁재산에 편입돼 있는 구조조정 대상기업 발행채권에 대해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기준에 따라 상각처리했다.
또 그에 따른 손실은 투자신탁의 '손익의 수익자 귀속원칙'에 의해 수익자가 부담했다.
이와 관련,얼마전 투자신탁의 수익률 하락에 불만을 가진 수익자가 수익증권 판매회사를 상대로 지방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했고,법원은 이를 이유있다고 받아들여 가압류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지방법원의 이번 가압류결정은 투자신탁제도의 운영체계와 법률관계에 대해 중대한 문제점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과연 법원이 피보전(被保全)권리의 존부(存否) 및 당사자적격에 대해 충실히 심리했는지 의문이 든다.
증권투자신탁의 당사자는 투자자인 수익자와 위탁회사 및 수탁회사로서 판매회사는 투자신탁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고 위탁회사와의 위임계약에 기초하여 수익증권의 판매업무를 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투자신탁제도는 기본적으로 신탁원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법적 근거없이 수익자 보호를 명분으로 그 본질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위탁자가 신탁재산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한 이상 그 운용결과에 대한 손익이 수익자에게 투명하게 귀속되는 실적배당주의 원칙,수익자 평등주의 원칙은 투자신탁제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침해될 수 없는 원칙이다.
단편적인 미봉책으로 권리없는 수익자를 보호하는 정책적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돼서는 오히려 수익자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채무자에게 심리적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처분·가압류가 남용되고 있다.
또한 법원의 보전처분에 대한 충실한 심리부족으로 인해 채무자의 이의신청도 쇄도하고 있다.
심지어는 부당 가압류를 당해 나중에 본안소송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재력은 이미 빈껍데기에 불과하여 실질적으로 구제받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금융기관에 대한 가압류결정에 있어 법원은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원은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 등이 금융기관에 대해 가압류 신청을 할 경우 약자 보호나 소비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가압류신청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상적인 영업행위를 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경우 도주를 하거나 책임재산을 은닉하는 등 강제집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데도 말이다.
'보전의 필요성'측면에서 보면 금융기관에 대한 가압류 신청의 경우 신속한 보전처분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가압류를 당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신뢰의 추락과 자금의 동결로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처럼 피보전권리가 존재하지 않고,보전의 필요성이 없는데도 동일한 가압류가 일시에 몰린다면 수천억원의 자금이 동결될 수 있으며,당해 금융기관은 법·제도적 문제로 인해 '흑자부도'와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금융기관의 예금계좌는 자신의 고유계정 자금만이 아닌 고객자금 및 다른 금융기관과의 거래자금도 결제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한 금융기관의 자금동결은 타 금융기관의 결제불능과 연쇄부도를 일으켜 종국적으로는 국민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에 대한 가압류에 있어서는 가압류결정전 소명기회의 부여나,예금이 아닌 부동산 등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남소(濫訴)를 방지하기 위해 가압류 보증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예금계좌에 대한 가압류 결정에 있어 당사자의 법적 지위에 맞는 피보전권리가 존재하는지 충실히 심리해 가뜩이나 관치금융의 폐해로 멍든 금융기관을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회생 불능의 상태로 내모는 일이 없도록 법원은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
studde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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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