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10일,이 땅에 또 하나의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이른바 교수노조.교수가 어째서 노동자인가 하고 대뜸 화부터 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처하는 이 지점에 오늘날 노동자의 위상이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의 개념이 그만큼 확장된 것이다. 1990년부터 나타난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을 우리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김소진의 유작(遺作) '내 마음의 세렌게티'(1997)의 주인공은 증권회사 외환 딜러지만 불황을 만나 실직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1997)의 여주인공 역시 경기 하강 탓에 해고되는 처지에 빠져 있다. 그런데 그녀는 아이 딸린 이혼녀에다 신세대 감각의 출현에 당혹해 하는 의류업체 디자이너다. 노동의 소외 속에서도 자기 존재감을 얻고자 애쓰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신인작가 윤성희에 이르면 복사기에 제 얼굴을 대고 찍어내 보는 모티프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레고로 만든 집'(1999)은 2000년대에도 노동과 노동자는 여전히 우리 삶의 근본적인 양식이 될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요한 장을 형성하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준다. 이제 우리 소설은 가난에서 존재의 문제로 노동(자)에 관한 탐구주제를 바꿀 때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