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를 계기로 여권의 정책결정 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하는 여권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고위당정회의와 국정협의회가 폐지되는 대신 여·야·정 정책협의회가 활성화 되면서 야당의 입김이 강해지는 양상이 뚜렷해 지고 있다. 이를 반영,정부는 사안에 따라 야당과도 당정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있다. 민주당 한광옥 대표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국정을 초당적으로 운영키로 한 마당에 야당과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여·야·정 정책협의회를 활성화 할 것을 야당에 제의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여·야·정 협의회의 활동영역을 기존의 경제문제에서 국정전반으로 넓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강운태 제2정조위원장도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함께 하는 당정회의는 앞으로 없어지게 된다"며 고위당정회의의 해지를 기정사실화한 뒤 "모든 것을 국회안에서 해결하는 차원에서 원내협의가 실질화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 위원장은 "특히 상임위별로 여·야·정 협의를 강화해 실효성을 높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야당과의 협의를 희망하기는 정부측도 마찬가지다. 새해예산안 조율을 위해 이날 당정회의에 참석했던 전윤철 기획예산처장관은 "앞으로 야당과 정책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야당과도 당정협의를 가지겠다"고 밝혔다. 여권의 이같은 기류변화는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여야간 초당적 협력의 여건이 조성된데다 현실적으로도 과반수를 훨씬 넘는 한나라당(1백36석)과 자민련(15석)의 협조없이는 어떤 정책도 추진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 따른 것이다. 당장 민주당은 새해 예산안을 5조원 증액하는 문제와 관련,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대신 '선(先)야당과의 합의 후(後)정부 동의'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민주당이 일부 경제법안에 대해 정부발의 형태에서 탈피,여야 공동발의를 추진키로 한 것도 새로운 기류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